[월드 이슈] 평양 지하철 개방·주민과 함께 노동체험… ‘외화벌이’에 활짝 열린 北

입력 2014-07-15 03:02
“죄송합니다만, 아래 세 부류의 손님들은 저희 여행사의 상품을 구매할 수 없습니다. 첫째 남한 사람들 , 둘째 남한에 주소지를 둔 외국인들, 셋째 남한 이외 지역에 살더라도 신문기자이거나 사진작가, 방송 인인 경우는 정중히 사절합니다. 하지만 미국 등 외국 국적의 한국인은 상품을 사실 수 있습니다.”

북한 상품을 판매하는 영국 런던 소재 여행사 '주체(Juche)투어' 홈페이지에 나온 문구다. 북 한 당국이 요즘 전방위로 해외 관광객 유치에 나서면서, 북한이 해외 여행사들에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 르고 있다. 해외 여행사들은 “전 세계 다른 곳에선 접하기 어려운 독특한 사회주의 체제”임을 강조하며 여행상품 판매에 나섰고, ‘은둔의 국가’였던 북한도 사회주의 체제를 관광 상품화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14일 “북한의 ‘관광 진흥책’은 유엔 차원의 경제 제재가 장기화되면서 그만큼 먹고살기 어려워졌다는 방증”이라며 “북한이 앞으로도 외화벌이 차원에서 관광산업을 키우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스위스에서 유학한 경험 때문에 관광업 활성화에 적극 나서는 것이란 관측도 내놓고 있다. 스위스는 경제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특히 높은 산과 풍부한 눈 등 천혜의 관광자원이 많아 북한이 모델로 삼기 좋은 나라다. 우리 정보 당국은 김 제1비서가 마식령 스키장 건설을 독려했던 데에도 이 같은 배경이 깔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 프로농구 선수 출신인 데니스 로드먼을 자주 북한에 초청하는 것 역시 관광객 유치 차원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북한 관광이 뉴스에 자주 거론됨에 따라 실제 북한에서의 관광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운영하는 해외 관광 사이트와 해외 소재 외국 여행사, 또 정보 당국자의 의견 및 내외신 소식 등을 통해 북한 관광의 전반을 들여다 봤다.

◇‘북한 관광’ 눈에 띄는 확산세=북한 관광은 해외 여행사들이 관광객을 모집하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해외 여행사들 가운데는 중국 회사가 100곳 가까이 된다. 우리 교포가 많은 미국과 평양에 대사관을 둔 영국 등 유럽 지역에도 10곳 안팎의 여행사가 운영 중이다. 북한은 또 우리로 치면 한국관광공사에 해당하는 ‘북한 고려국제여행사’의 동남아지부를 말레이시아에 개설해 10여곳의 동남아 지역 여행사들과 업무제휴를 맺는 등 동남아 관광객 유치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얼마 전에는 러시아 정부와 관광열차 개통을 추진키로 하며 이 지역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해외 여행사들이 판매하는 패키지 상품은 짧게는 3∼4박에서 길게는 17박짜리도 있다. 런던의 주체투어가 내놓은 9월 13∼30일 북한 전역을 여행하는 17박18일짜리 상품의 경우 비용이 1인당 3650유로(505만원)다.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출발하는 비행기가 포함된 가격이고, 유럽에서 베이징까지의 항공료는 본인 부담이다. 이 회사의 3박4일짜리 패키지는 775유로(110만원), 4박5일은 875유로(121만원), 7박8일짜리는 1200유로(166만원)다.

미국 업체인 로스앤젤레스 소재 하나로트래블은 최근 5박6일짜리 상품을 내놓았는데 가격은 2499달러(260만원)다. 마찬가지로 베이징까지 항공료는 자부담이다. 미국에서는 단순 호기심 차원에서 여행하려는 미국인과 이산가족 상봉 차원의 교포가 북한을 찾고 있다.

비행기를 통한 입국 외에도 베이징과 평양을 오가는 기차 패키지 상품도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기차는 월·수·목·토요일에만 하루 2회 운행된다. 베이징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해당 요일에 오후 5시25분에 떠나 다음날 오후 5시45분 평양에 도착한다. 평양에서는 오전 10시40분에 떠나 다음날 오전 8시25분 베이징에 도착한다. 중국 관광객을 실어 나르기 위해 랴오닝성의 단둥과 평양을 잇는 국제열차도 운행 중이다.

중국 동북 3성의 여행사들은 국경에서 가까운 평안북도 신의주, 나선특별시, 함경북도 회령·청진시, 경성·온성군, 자강도 만포시 등을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5만∼20만원짜리 상품도 팔고 있다.

◇북한의 주요 관광지는=북한의 볼거리는 여전히 유명한 산이나 김일성·김정일 부자 관련 유적지가 많다. 최고의 관광지는 단연 평양이다. 북한에서는 인구가 가장 많고 먹거리와 볼거리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김일성광장, 주체사상탑,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 등과 북한이 나포한 미국 푸에블로호 등도 평양에 있다. 북한은 평양의 지하철을 외국인에게 전면 개방하기도 했다. 대피소를 겸하기 때문에 땅속 100m 가까이 깊숙이 들어가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 외국인들이 놀라워한다고 전해졌다. 아울러 쭉쭉 벋은 웅장한 도로가 인상적이라는 평가도 많다.

평양 북쪽으로 160㎞ 떨어진 묘향산(1909m)과 고려 유물이 많은 개성도 주요 관광지다. 북한의 발전상을 보여주려는 것인 듯 평양에서 남서쪽으로 50㎞ 떨어진 남포공단도 중요한 코스 중 하나다. 남포에는 대형 조선소와 공장들이 있다.

동해안 쪽 큰 도시와 명승지도 인기가 많다. 평양에서 동쪽으로 200㎞ 정도 떨어져 있어 차로 3∼4시간 거리인 항구도시 원산과 원산 북쪽으로 115㎞ 떨어진 함흥이 대표적인 코스다. 또 아래쪽으로는 금강산(1639m)도 해외 관광객이 자주 찾는 곳이다.

해외 여행사들은 백두산에 대해 “북한의 성지”라고 소개하면서 김일성의 항일유적지, 김정일 출생지 등을 코스에 포함시켰다.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도 인기장소다.

◇이색 관광 상품도 속속 등장=북한은 근래 들어선 사회주의 교육시설이나 북한 주민과 함께 체험하는 프로그램 등으로 관광 상품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이를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조선신보에 따르면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노동체험 관광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농장이나 과수원에서 북한 주민과 함께 모내기와 김매기, 과일 수확 체험을 하는 상품이다. 몇 년 전까지 주민들의 외국인 접촉을 극구 막았던 것에 비춰보면 상전벽해식 변화다.

등산 애호가를 위해선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등에서 트레킹 상품을 내놨다. 관광객이 직접 태권도를 배워 북한 선수들과 시합을 해보는 태권도관광, 만경대상 마라톤경기대회에 참가하는 등의 다양한 체육 관련 상품도 생겼다. 대북 투자에 관심 있는 외국인 사업가를 위한 일종의 비즈니스 관광도 증가세라고 조선신보는 전했다.

북한은 라오닝성 단둥시와 손잡고 중국인이 자가용으로 단둥에서 압록강 철교를 넘어 국경지역을 둘러보는 자가용 관광코스도 개발했다. 지난달 28일에는 중국의 낚시꾼을 겨냥한 ‘나선-옌지 낚시관광축전’도 열었다. 중국 여행사는 북한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는 5일짜리 여행 상품을 1만2200위안(199만원)에 내놓기도 했다.

북한은 관광객에게 평양국제축구학교를 개방하고 사회주의 교육기관을 살펴보게 하는 관광코스도 만들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