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국민 앞에 부각되는 일은 그리 없다. 국보 1호 숭례문에 불이 났다거나, 그래서 복구했더니 졸속으로 드러났을 때 정도. 말하자면 매 맞을 때다. 최근 경사스러운 일로 문화재청이 주목을 받았다. 이달 초 중국 시진핑 주석의 방한에 동행한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 여사의 창덕궁 후원 나들이에 나선화(65) 문화재청장이 해설사로 나섰던 것이다. 5월 중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경복궁 구경을 갔을 때도 그가 안내했다. 문화재청장이 정상외교 무대에서 ‘문화 외교관’ 노릇을 한 건 처음이라고.
취임 7개월째인 나 청장을 인터뷰했다. 지난달 중순 서울 고궁박물관 청장실에서의 티타임과 최근의 전화통화 등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평지가 아닌 자연 속에 조성한 궁궐…자금성 가진 펑 여사도 반해
창덕궁 영접 뒷얘기가 궁금했다. 서양의 대통령이라면 모를까 자금성이라는 대규모 궁이 있는 중국의 퍼스트레이디에게 궁궐이 감흥을 줄까라는 비판적 시각의 있어서다.
“자금성을 비롯한 동아시아 궁궐은 대부분 평지에 건설되었지요. 창덕궁은 다릅니다. 구릉에 지어 지형지물을 잘 활용했습니다. 산을 끼면서 자연과 어우러진 궁궐이지요. 왕이 백성들의 농사짓는 고통을 알고자 궁궐에 논까지 만든 애민정신이 깃든 곳이지요. 중국과는 다른 그런 우리 궁궐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해설했습니다.”
펑 여사는 청장에게 자금성(고궁)을 그린 두루마리 그림 ‘고궁전영도’를 선물했다. 펼쳐 보인 펑 여사는 고궁 속 나무 있는 곳을 가리키며 “평지에 건설됐지만 이렇게 성에 수목을 조성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날은 오락가락하던 비가 때마침 그친 뒤라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비원의 정경이 탄복할 만했다. “‘여기가 뤼수이칭산 (녹수청산·綠水淸山)’이라고 했더니 펑 여사가 웃더라”고 나 청장은 에피소드를 전했다. 환경보존 대책으로 남편 시 주석이 언급한 표현인 녹수청산을 패러디했던 것이다.
펑 여사는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잘 취해주는 세련된 모습이, 오바마 대통령은 날씨가 더워 양복 재킷을 벗었다가도 ‘궁에서 이러면 안 되지’ 하며 얼른 다시 입는 배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인간문화재 복수 지정”…승자독식이 낳은 전통 단절 개선하겠다
“문화재청이 불신의 이미지에 덮인 상태에서 제게 맡겼습니다. 임명자인 대통령도, 국민도 이걸 반듯하게 정리하길 바란 걸 겁니다.”
나 청장은 “경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 결과, 언론의 지적사항 등을 조사하고 개선안을 만드느라 바빴다”며 “국회에 제출한 법안만 해도 이만한 두께가 되더라”라며 엄지와 검지를 10㎝가량 벌려 보였다.
감사원 감사 결과 가장 심각성을 드러낸 건 역시 ‘숭례문 사태’의 단초가 된 단청이었다. 단청장이 전통 재현에 실패하자 화학접착제를 아교에 몰래 섞었고 그게 단청 박락(벗겨짐) 원인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은 문화재청에 전면 재시공을 지시했었다.
나 청장은 “그런데 단청의 천연안료 개발의 맥이 끊겼다. 전통기술 보유자가 남아 있지 않고 전통아교는 녹이는 온도조차 모르는 상태가 됐다”며 “단절된 기술을 찾아내 시험하고 완벽하게 시공하기 까지는 7년은 걸릴 것이라는 의견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급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게 숭례문 사태의 교훈 아니냐”고 강조했다.
나 청장은 전통기술 단절의 원인을 이를테면 승자독식의 인간문화재(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방식의 부작용에서 찾았다. 경기민요를 30년 배운 사람이 여럿 있다고 치자. 그중 한 사람만 지정되는 현 시스템에서는 후학과 돈이 모두 지정자에게 몰리면서 나머지가 평생 익힌 기술은 사장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인간문화재를 복수로 지정하게 하거나 지정이 안돼도 전승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 이걸 제 임기 내에 바꾸겠다”고 말했다.
또 기존의 문화재 정책은 접근을 못하도록 줄 쳐놓는 ‘동결보존정책’이었다며 이제는 국민들에게 베푸는 문화재 정책을 만들겠다고 했다.
#문화계의 마당발…“많은 사람이 저를 추천하셨다.”
역대 문화재청장은 교수 혹은 문화부 공무원 출신 두 부류였다. 행정 경험도, 학위도 없는 그가 청장이 된 건 이변에 가깝다.
“저는 학사 출신”이라는 그는 일부 언론에 석사로 기재된 건 잘못된 거라고 정정했다. 그러면서도 “정말 많은 분이 추천해서 여기까지 왔다”며 전문성과 행정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보였다. 다른 곳에서는 배우지 못하는 관리 경험과 연구실적의 산실로 청춘을 다 보낸 이화여대박물관 학예직 경험을 들었다. 30년 동안 일하며 전국의 문화재발굴 현장을 누볐고 대학박물관의 기획전시대를 열었으며 전국대학박물관협회를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이게 모두 전문성과 소통, 행정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는 것이다.
화제를 슬쩍 돌려 임명 초 세간에 회자됐던 김지하 선생도 추천했느냐고 물었다. “김지하 선생은 그런 거 하시는 분 아닙니다. 워낙 생각이 크시구요. 뜻하는 바가 저희같이 세상일 생각하는 분과 다르지요.”
청와대에서 제의를 받고 의논을 했더니 “글쎄, 글쎄…. 느낌이 좋은데” 정도로만 답했다고. 그는 인생 중대사를 상의할 정도인 김지하 선생을 “1990년대 중반, 민주화 투사가 아닌 사상가로서 만났다”고 했다. 김지하 선생은 동양정신으로 산업사회의 황폐함을 치유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고 자신도 그런 생각을 자주 얘기했는데 누군가 둘이 통하니 만나보라고 주선을 했다는 것이다. 나 청장은 김지하 선생이 발족한 ‘생명과평화의길’에서 일했다.
나선화 청장은
△1949년 서울생 △상명여고 △이화여대 사학과 △이화여대박물관 학예실(1977∼2006) △한국박물관학회 이사(2004∼2011) △문화재청 문화재위원(2005∼2013) △사단법인 생명과평화의길 상임이사(2004∼2013) △저서 ‘한국의 소반’(대원사) ‘옹기의 원류를 찾아서’(이화여대출판부) ‘한국 도자기의 흐름’(세계도자엑스포) 등 △독신
손영옥 문화부장 yosohn@kmib.co.kr
美·中 정상 방한때 고궁 안내해보니… 펑리위안은 비원처럼 세련됐고 오바마는 근정전처럼 품격있어
입력 2014-07-14 02:11 수정 2014-07-14 0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