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가 안겨준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가 간 협력이 중요하지만 국민국가는 문제 해결보다는 오히려 문제의 원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글로벌 도시들이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데 서울이 아시아 도시 연합 창설의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쥐기 바랍니다.”
세계적인 석학 울리히 벡 뮌헨대 교수가 11일 서울시청에서 ‘메가시티-위험을 넘어 안전도시를 향하여’란 주제로 열린 ‘메가시티 싱크탱크 협의체’(메타·MeTTA) 창립 포럼에서 아시아 도시 연합체 창설을 위한 서울의 적극적인 역할을 제안했다.
메타는 거대 도시들인 메가시티의 각종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부·민간 싱크탱크의 연구협의체다. 서울,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 싱가포르, 베트남 호찌민 등 5개 도시와 3개 국제기구가 가입해 있다.
벡 교수는 이날 ‘왜 초국적 협력이 필요한가’란 기조연설을 통해 “한 나라 입장에서 글로벌 리스크(위험)를 바라보면 해답을 찾을 수 없다”며 “정부, 종교 주체들, 사회적 운동가, 기업인들, 전문가 등 싱크탱크들이 협력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는 일상적으로 범세계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어 그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며 “아시아 도시 연합의 첫발을 내딛는 데 서울이 주도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벡 교수는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대담에서 도시 간 협력과 시민 참여 등을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그는 “유럽 국가들은 150년에 걸쳐 근대화를 이뤘지만 한국은 50년 만에 압축 달성해 다양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정부에 대한 불신과 ‘조직화된 무책임’이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정부가 신뢰를 잃게 되면 제도와 국가적 시스템,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위험이 배가된다”며 “구체적인 위험에 대한 빠른 답이 나오더라도 정치적 시스템이 신뢰를 잃는다면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 시장은 “체제에 대한 신뢰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래야 많은 시민이 참여하고 그로 인해 안정된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화답했다. 그는 특히 “미국에서 카트리나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이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이었고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였다”며 “위험 요소를 줄이려면 안전 문제와 관련한 의사 결정에 시민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벡 교수는 이어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도시 간 연대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동아시아의 민족적 갈등이 도시 연합체 결성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대해 “유럽연합도 인종청소가 일어난 2차 세계대전을 딛고 성사됐다”며 “도시가 중심이 돼 새로운 잠재력을 끌어낸다면 얼마든지 도시연합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벡 교수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 “한국은 세월호 사고라는 파국 이후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정부는) 제도의 실패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 재난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는 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며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새로운 정치지형을 여는 새로운 리더십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벡 교수는 독일의 사회학자로 1986년 ‘위험사회’란 저서를 통해 서구를 중심으로 추구해온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이 ‘위험사회’를 낳는다고 주장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
“서울, 아시아 도시연합 창설 주도권 가져야”
입력 2014-07-12 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