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서울지방경찰청에 의무경찰로 입대한 박모씨의 군 생활은 악몽 같았다. 전경관리계 기율대장이었던 경찰관 임모(49)씨는 박씨가 입대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박씨를 때리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임씨는 2010년 9월 휴가를 다녀온 박씨가 빈손으로 왔다는 이유로 “××놈아, 아버지가 주시는 것 없었냐. 뭐라도 가져와야 되는 거 아니냐”고 폭언하며 머리를 잡아당겼다. 임씨는 박씨가 컴퓨터 작업을 하는 도중 컴퓨터가 다운되자 박씨의 머리를 때렸다. 임씨의 가혹행위는 해를 넘겨 9개월 동안 이어졌다. 임씨는 2011년 4월 사무실에서 박씨에게 “힘들면 옥상이든 집에서든 뛰어내려 죽어라”고 욕하며 박씨의 이마와 뒤통수를 때렸다. 임씨는 뒤늦게 폭행 혐의로 입건됐고, 검찰은 임씨를 벌금 500만원에 약식 기소했다. 박씨는 임씨가 청구한 정식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강력한 처벌을 원했으나 서울중앙지법 맹준영 판사는 지난 6월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에 따라 임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총기 난사로 12명의 사상자를 낸 임모(22) 병장 사건으로 군내 부조리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군내 부조리 중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폭행 사건과 관련해 검찰, 법원 등 사법 당국의 처벌 수위는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다. 헌병대에서 근무하던 정모(22)씨는 지난해 10월 통신 암호를 암기하지 못했다며 후임병을 때려 고막을 파열시키고, 다른 선임병과 함께 3개월 동안 최씨를 폭행했다. 정씨는 후임병에게 수십만원의 근육보충제 등을 강제로 사게 한 혐의도 받았다. 정씨는 지난 4월 대전지법 서산지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받았다. 박모(24)씨는 후임병을 4개월여 동안 수십 차례 폭행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판정까지 받게 했다. 피해자와 합의도 못했지만 법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았다.
법조계에서는 군내 폭행에 대해 보다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다른 폭행 사건과 비교할 때 적당한 형량이라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서울 지역 한 판사는 “반복되는 군대 사고를 고려할 때 사안이 크고 합의를 하지 못한 경우 엄한 처벌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정재영 병영인권연대 사무차장은 “사회에서 발생하는 폭행 사고는 대부분 일회성으로 끝나지만 폐쇄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군대 폭행은 자살 등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가해자들의 나이가 어리고, 전역 이후 대학이나 회사를 다녀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지나친 처벌은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군 조직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가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게 부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군대 폭력 사건을 심리했던 한 판사는 “‘나도 맞으면서 군 생활 했는데 왜 나만 처벌받아야 하나’고 주장하는 피고인이 있었다”며 “군 조직의 특수성으로 인한 문제를 가해자에게 모두 돌리기는 곤란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군 검찰, 군사법원의 군내 폭행 사건에 대한 관대한 처벌을 우선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유기준 새누리당 의원이 2012년 국방부 검찰단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군에서 폭행으로 입건된 사건은 1526건이었지만 절반이 넘는 1051건(66.2%)이 불기소 처분됐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군 검찰과 군사법원이 약하게 처벌하는 사안을 일반 법원이 엄하게 처벌하는 것도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생각해봅시다] “가혹행위 처벌 관대” “軍 조직 특수성 고려”… 법조계서도 의견 엇갈려
입력 2014-07-12 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