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구덩이서 건지신 하나님 은혜 놀라워”

입력 2014-07-14 02:27 수정 2014-07-14 02:38
지난 11일 서울 상도소망교회에서 만난 서정순씨가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내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남은 생을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살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허란 인턴기자

서정순(69·여)씨는 시각장애 1급, 지체장애 3급 장애인이다. 오른쪽 눈은 의안(義眼)이며 왼쪽 눈도 높은 도수의 안경을 써야 겨우 보인다. 다리는 완전히 펴지지 않아 한걸음 한걸음이 불편하다. 비가 올 때면 사지가 쑤신다. 서씨가 지나온 고통의 터널은 그녀의 몸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하지만 지난 11일 서울 동작구 상도소망교회에서 만난 그녀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행복”이라며 “사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신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다”고 고백했다.

평범한 주부였던 서씨에게 처음 고난이 찾아온 것은 1990년, 그녀의 나이 45세 때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로 왼쪽 가슴을 들어냈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거의 다 빠지고, 방사선 치료 탓에 피부는 까맣게 변했다. “여자로서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가족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시련의 시작일 뿐이었다.

항암치료 6개월 차로 암이 거의 완치돼 갈 무렵인 1991년 4월, 친구를 배웅하기 위해 지인들과 경남 사천공항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하동방향 남해고속도로 2차선 도로를 달리던 중 화물차 한 대가 중앙선을 넘어와 서씨의 차량을 들이받았다. 동행한 지인 두 명은 숨졌다. 서씨의 양팔과 다리는 분쇄골절됐고, 이마는 함몰됐으며, 그 탓에 오른쪽 안구가 떨어져 나갔다.

진주의 한 병원으로 이송돼 20시간이 넘는 수술 끝에 다행히 고비는 넘겼지만 서씨가 회복하길 기대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수술이 끝난 뒤에도 몸을 움직이지 못했고, 극심한 통증과 싸우며 몇 개월을 보냈다. 온몸에는 욕창이 생겼다. “그렇게 병상에 누워 있는데 친오빠가 매일 성경구절 복사해서 보여주고, 읽어주더군요.” 그때 서씨의 마음을 움직인 구절이 있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말씀이 힘이 됐습니다. 용기를 갖고 재활에 힘썼습니다.”

서씨는 이후 2001년까지 10년 동안 무려 16차례 수술을 받고, 재활을 하고 나서야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녀의 회복을 두고 사람들은 기적이라 했지만 서씨는 마냥 감사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힘든 건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절망감과 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서씨의 삶에 변화가 온 건 2006년 상도소망교회 서충원 목사를 만나면서부터다. “목사님께서 로마서 8장을 본문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선포한 설교를 듣고 제가 겪고 있는 고난과 장애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서 목사의 권유로 서씨는 놓쳤던 학업의 끈을 40여년 만에 다시 잡았다. “가난 탓에 고등학교를 중퇴했던 것이 한이 됐는데 용기를 얻어 도전을 했습니다.” 2010년 서울 일성여고에 입학한 그녀는 대학 진학의 목표도 세운다.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공부가 하고 싶었습니다.”

서씨는 용인송담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수시로 합격해 2012년 입학했다. 서씨의 사정을 접한 학교에서는 장학금을 주고, 무료로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손자, 손녀와 같은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니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기더군요.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MT도 꾸준히 참석하고, 학점관리도 열심히 해서 지난 2월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용인송담대학은 서씨를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서씨는 학교생활을 하며 사회복지사2급, 한국레크레이션치료사2급, 다문화복지사2급 등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해서라고 했다. “저는 장애인이지만 하나님께서 가족과 교회 성도 등 여러 손길을 통해 베푸신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랑에 빚진 자입니다. 그 경험을 자양분 삼아 앞으로 남은 삶을 이웃을 돌보며 살겠습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