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신장병 환자의 빈혈증 개선에 쓰이는 조혈호르몬이 고산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국내 의료진이 세계 최초로 규명, 고산병 극복에 새 활로가 열리게 됐다.
서울아산병원은 신장내과 김순배 교수팀이 해발 4130m의 네팔 안나푸르나 봉 등산객 39명을 대상으로 조혈호르몬의 고산병 예방 효과를 검증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한 결과, 이 같이 나타났다고 13일 밝혔다.
해발 2000m가 넘어 산소가 부족한 고산 지대에 우리 몸이 놓이게 되면 몸 안에서 약 3∼4주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헤모글로빈이 증가하는 저(低)산소 자극 현상이 시작된다. 고산병은 이 적응기간을 무시하고 곧바로 높은 산에 올랐을 때 나타나는 두통 어지러움 등과 같은 일종의 생체리듬 혼란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순배 교수팀은 조혈호르몬이 고산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해 초 안나푸르나 봉 등산 희망자를 공개 모집, 39명을 뽑아 두 그룹을 나눴다. 이후 실험군(20명)엔 산에 오르기 4주 전부터 일주일 간격으로 조혈호르몬을 총 4회 투약했고, 나머지 대조군(19명)은 주사를 맞지 않고 그냥 산에 오르도록 했다. 그 결과 실험군의 헤모글로빈 수치는 조혈호르몬 주사 전 평균 13.7g/㎗에서 총 4회 주사 후 15.4g/㎗로 상승했다. 반면 대조군의 평균 헤모글로빈 수치는 14g/㎗로 변화가 없었다.
김 교수팀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후 이들의 건강상태를 다시 점검했다. 그랬더니 두통, 구토, 피로감, 어지럼증, 수면장애 등을 증상별로 체크하는 국제 통용 고산병 지수(가장 심한 경우 15점)가 대조군의 경우 평균 5.9점으로 실험군(2.9점)에 비해 배 가까이 높았다.
특히 ‘급히 하산이 필요한 정도’로 고산병이 심한 환자가 실험군에선 단 3명에 그쳤으나 대조군에선 10명이나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조혈호르몬은 신장에서 분비되어 혈색소를 올리는 호르몬으로 만성신부전 환자의 빈혈치료에 쓰이며 근육량을 늘리고 운동능력을 향상시켜 운동선수의 경우 사용금지약물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일반인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김순배 교수는 “최근 고산지방으로 해외 원정 여행과 등반이 늘어나면서 고산병에 대한 인식이 있더라도 예방법을 몰라 고생하는 등산객이 많다”며 “해외의 높은 산을 오를 때는 서두르지 말고 안전한 등산과 고산병 예방을 위해 미리 조혈호르몬 주사를 맞는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대한의학회 영문판 학술지 ‘저널 오브 코리안 메디칼 사이언스(JKMS) 최신호에 게재됐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빈혈증 치료 조혈호르몬 고산병 예방에 효과 있었다
입력 2014-07-14 02:17 수정 2014-07-14 0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