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이주열 총재의 경기 흐름에 대한 인식이 최근 3개월 새 크게 달라졌다. 향후 통화정책의 방향을 알려주는 깜빡이를 좌회전에서 우회전으로 급변경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의 정책 공조를 위해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군불 지피기’ 아니냐는 목소리에서부터 통화정책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총재는 지난 4월 취임 직후 4%대 성장 전망을 전제로 장기적인 금리의 방향성은 ‘인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3개월 뒤 경기 하방 리스크를 언급하는 등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놓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 총재 자신도 10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경기인식에 대한 상황은 물론 3개월 전 취임할 때와 지금은 좀 바뀐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가장 큰 변화는 세월호 사고와 최경환 후보자의 등장으로 요약된다.
이 총재는 “(4월 전망 당시) 국내 리스크보다 오히려 대외 리스크가 더 크다고 말씀드렸다”며 “그때만 해도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었고 우크라이나 등의 지정학적 위험이 많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이후에 대외 리스크는 많이 완화됐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면서 그 파급효과가 일반의 예상보다 훨씬 크고 길게 가는 상황이 됐기 때문에 경기에 대한 인식은 3개월 전하고 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경제여건의 악화는 실제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한은이 이날 발표한 올해 하반기 경제전망을 보면 연간 전망치가 종전 4.0%에서 3.8%로 낮아졌고 민간소비는 3.1%에서 2.3%로 증가폭이 크게 줄었다. 그렇더라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2% 포인트 하향 조정한 것에 비해 이 총재의 인식 변화폭이 크다는 지적이다. 서향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0.2% 포인트 하향 조정은 상반기의 부진을 반영한 것으로 하반기 회복 흐름에 대한 시각은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럼에도 이 총재는 경기 하방 리스크를 강조하는 등 엇갈린 모습”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최 후보자의 금리인하 압박이다. 최 후보자는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은도 지금 경제상황에서 하방 위험이 많이 생겼다는 데 동의할 것”이라며 금리인하를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이 총재도 이에 화답하듯 “현재로선 하방 리스크가 다소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또 “경제를 보는 시각은 (최 후보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정부의 다른 거시경제정책들은 고유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전체적인 정책효과가 최대화될 수 있도록 조화롭게 운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중앙은행과 정부 정책의 큰 방향 자체가 어긋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한은의 고유 기능은 물가안정이다. 한은이 수정 전망치로 제시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로 종전보다 0.2% 포인트 낮아졌다. 이처럼 물가가 하향 안정화되는 상황에서 한은의 통화정책은 경기 회복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지난해 5월 금리인하가 있기 전에 금통위원들의 의견이 엇갈렸듯이 이번 금통위에서도 거의 1년 만에 소수의견이 나왔다는 점에서 금리인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노무라증권 권영선 연구원은 “이달 기준금리 동결이 만장일치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8월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에 더욱 무게가 실릴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올 하반기에 미국 등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에 따른 금리인상 요인도 도사리고 있어 이 총재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
이주열, 금리 깜빡이 ‘우회전’ 급변경… 석달 만에 말바꿔
입력 2014-07-11 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