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삶·음악 따로 있지 않았다… 세계적 음악가들의 육성 담긴 책 3권

입력 2014-07-11 02:46
스팅은 음악의 위로 속에서 유년기를 넘어왔고, 노래하는 삶을 찾아서 청년기 내내 방황해야 했다. 스팅의 자서전은 그의 노래에 깃든 감성과 메시지, 유머가 어디서 온 것인지 알게 한다. 마음산책 제공
세계적인 음악가 세 명의 책이 나란히 도착했다. 현대예술의 선구자 존 케이지, 팝스타 스팅, 영화음악의 전설 엔니오 모리코네. 국내에서 책으로 만나기는 다들 처음이다. 존 케이지는 강연문으로, 스팅은 자서전으로, 모리코네는 인터뷰로 자신의 인생과 음악을 얘기한다. 그들의 육성을 듣노라면 음악은 결국 그 사람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확인하게 된다.

사일런스(존 케이지/오픈하우스)

비디오아트로 유명한 백남준이 생전에 “나의 아버지”라고 한 인물이 바로 케이지다. 현대음악, 현대무용, 현대미술 등 여러 장르에 걸쳐 케이지는 선구자, 사상가, 혁신가, 파괴자로서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런데 정작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그의 음악이 아니었다. 그의 말이었다. 그는 음악으로 말한다기보다 말로 음악을 한다고 할 정도로 예술적 측면보다 사상적 측면에서 주목받은 인물이다.

그의 첫 책이 1961년 출간된 ‘사일런스’다. 그리고 이 책이 오늘날 그의 명성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케이지가 1937년과 1961년 사이에 쓴 기고문, 에세이, 강연문 23편을 수록한 ‘사일런스’는 괴팍하고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케이지 예술론의 정수를 담고 있다. 현대음악, 작곡법, 예술가론, 무용론 등 다양한 주제를 건드리고 있는데, 뒷부분에 실린 ‘무에 관한 강연’ ‘유에 관한 강연’ ‘한 명의 화자를 위한 45분’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또 무엇을 하고 있는가’ 등 4편의 강연문이 가장 유명하다.

내용 못지않게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글의 형식이다. 예컨대, ‘프로세스로서의 작곡’이란 강연문은 각 행을 1초 분량으로 쪼개 나열한다. ‘무에 관한 강연’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페이지를 가로질러 읽어야 한다. 어떤 글은 질문으로만, 어떤 글은 망자와의 가상 대화 형식으로 꾸며졌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1952년 뉴욕 우드스톡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4분33초 동안 연주자에게 침묵의 연주를 하도록 한 ‘4'33"’의 작곡가 케이지가 보이는 듯 하다.

스팅(스팅/마음산책)

영국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스팅의 자서전이다. 팝스타의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성공담이 중심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슬픔을 달래야만 했던 소년 고든 매슈 섬너(스팅의 본명)의 성장기에 가깝다. 국내 첫 발간되는 스팅의 책이기도 하다. 스팅의 글은 그의 노래처럼 슬프고 진솔한 이야기를 따뜻하고 경쾌하게 전달한다. 유머와 위트가 끊이지 않고, 전편에 낭만성이 배어있다.

스팅은 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일들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음악을 놓지 않는다. 한동안 교사로 일하며 밴드 활동을 병행하지만 결국 음악에 완전히 투신한다. 교장 수녀는 교사직을 그만두겠다는 스팅을 만류하기 위한 마지막 카드를 꺼낸다.

“그러면 연금도 못 받습니다.”

스팅은 침묵 끝에 입을 연다.

“수녀님, 죄송합니다.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누구도 행운만으로 성공하지 않는다는 것, 누구도 용기 없이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 누구도 상처가 있으며 누구라도 상처와 싸우지 않고 단단해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엔니오 모리코네와의 대화(엔니오 모리코네, 안토니오 몬다/작은 씨앗)

모리코네의 영화음악을 경배하는 뉴욕대 영화학과 교수 몬다에게 행운이 찾아든다. 2009년 여름 82세의 모리코네가 자신의 인터뷰집 출간을 결정하면서 작가로 그를 지목한 것이다. 2009년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한 달에 한두 번 뉴욕의 교수가 로마의 마에스트로를 찾아가 인터뷰한 결과로 이 책이 나왔다.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되고 진전되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버무려 읽는 재미를 더한다.

“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모리코네가 드디어 입을 연다. ‘황야의 무법자’ ‘미션’ ‘시네마천국’을 비롯해 약 450편의 영화음악을 만들어낸 모리코네는 그야말로 거장이다. 책에는 작곡가로서 하는 음악 얘기만 있는게 아니다. 영화계 명사로서 그가 전하는 영화와 감독, 배우, 제작자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수두룩하다.

‘미션’ 영화음악의 탄생기를 보자. 제작자는 처음에 레너드 번스타인을 고집했다. 하지만 그에게 도무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모리코네에게 요청을 하게 된다. 모리코네는 음악이 없는 상태로 영화 ‘미션’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정말 감동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겨우 이렇게 말했다.

“제가 했다가는 다 망치겠는걸요. 그대로가 훨씬 나아요.”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