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금리 깜빡이 ‘우회전’ 급변경… 석달 만에 말바꿔

입력 2014-07-11 02:46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동결을 의결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의 경기 흐름에 대한 인식이 최근 3개월 새 크게 달라졌다. 향후 통화정책의 방향을 알려주는 깜빡이를 좌회전에서 우회전으로 급변경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의 정책공조를 위해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군불 지피기’ 아니냐는 목소리에서부터 통화정책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총재는 지난 4월 취임 직후 4%대 성장 전망을 전제로 장기적인 금리의 방향성은 ‘인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3개월 뒤 경기 하방 리스크를 언급하는 등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놓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이 총재 자신도 10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경기인식에 대한 상황은 물론 3개월 전 취임할 때와 지금은 좀 바뀐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가장 큰 변화는 세월호 사고와 최경환 후보자의 등장으로 요약된다.

이 총재는 “(4월 전망 당시) 국내 리스크보다 오히려 대외 리스크가 더 크다고 말씀드렸다”며 “그때만 해도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었고 우크라이나 등의 지정학적 위험이 많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이후에 대외 리스크는 많이 완화됐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면서 그 파급효과가 일반이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크고 길게 가는 그런 상황이 됐기 때문에 경기에 대한 인식은 3개월 전하고 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경제여건의 악화는 실제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한은이 이날 발표한 올해 하반기 경제전망을 보면 민간소비는 4월 전망 당시 올해 3.1%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2.3%로 증가폭이 크게 줄었다. 실업률은 3.2%에서 3.5%로 높아진 반면 신규 취업자 수는 50만명에서 48만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봤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최 후보자의 금리인하 압박이다. 최 후보자는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은도 지금 경제상황에서 하방 위험이 많이 생겼다는데 동의할 것”이라며 금리인하를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이 총재도 이에 화답하듯 “향후 성장경로상의 상방, 하방 리스크를 평가해보면 현재로선 하방 리스크가 다소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두고 이 총재가 최 후보자와 코드를 맞추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총재는 또 “경제를 보는 시각은 (최 후보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정부의 다른 거시경제정책들은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전체적인 정책효과가 최대화될 수 있도록 조화롭게 운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중앙은행과 정부 정책의 큰 방향 자체가 어긋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한은의 고유기능은 물가안정이다. 한은이 수정 전망치로 제시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로 종전 2.1%에서 0.2% 포인트 낮아졌다. 이처럼 물가가 하향 안정화되는 상황에서 한은의 통화정책은 경기 회복세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이 총재가 향후 통화정책 방향으로 “앞으로 성장세 회복을 지원하는 가운데 중기적 시계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 범위 내에서 유지되도록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최 후보자가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한 데 대해서는 입장을 달리했다. 그는 “지금으로서는 국내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비슷한 상황으로 빠져들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