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에서 풍겨오는 고급스럽고 향긋한 냄새, 이국의 사람들, 그리고 오가는 이들의 들뜬 눈빛, 깃 선 제복의 승무원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공항의 첫 인상이다. 입국장으로 들어가는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의 걱정어린 눈빛도 떠오른다. 내 모습이 반사되는 반질거리는 대리석 바닥처럼, 공항은 그렇게 반짝이고 화려하고 비일상적인 공간으로 다가온다.
어떤 이들은 가끔씩 마음이 답답할 때, 공항에 가서 몇 시간씩 보내고 온다고 한다. 잠시나마 일상의 지루함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언젠가 취직 문제로 씨름하던 사촌동생의 꿈은 무엇이라도 좋으니 공항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공항이란 그 특수한 공간이 뿜어내는 분위기가 좋기 때문이었다. 장래성과 안정을 거듭 강조하는 어른들은 도대체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게 무엇인지 살짝 알 것 같았다.
공항이 유난히 여러 의미를 담고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도 그곳이 국경의 경계를 벗어나 떠남과 들어옴이 교차하는 상징적인 장소여서일 것이다. 철저하게 익숙한 과거와 차단되고, 완전하게 낯선 땅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되는. 가슴에서 발끝까지 쿵쿵, 삶의 맥박이 오롯이 느껴지는 그런 곳이기에.
처음 외국에 가기 위해 공항을 밟아본 것은 도쿄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김포에 갔을 때였다. 버스도 아니고 기차도 아닌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탄다는 설렘에 온몸에 긴장이 느껴졌다. 그런데 나를 더 압도한 것은 너무도 큰 터미널과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탑승까지의 과정이었다. 탑승과 수속시간이라는 공항에서의 대기시간에 무지해 김포공항을 100미터 레이스 하듯 뛰고 난 뒤론, 공항에서의 시간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이처럼 짐을 부치고 보딩패스를 받고, 입국수속을 하는 시간은 새로운 세계의 입문을 알리는 하나의 엄숙하고도 긴장된 리추얼이었다.
얼마 전 상하이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갔다. 그새 몇 번의 외국 여행과 출장은 나를 능숙한 여행자로 만들어놓았다. 이제 딱히 두려운 것도 새로운 것도 없다. 돌돌, 짐가방을 밀고 끄는 단조로운 소리를 들으며 만약 떠남도 습관이 된다면, ‘공항’은 더 이상 우리에게 설렘의 장소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내 마음속 어딘가, 낯설기에 생생한 ‘공항’ 같은 공간 하나쯤은 늘 열어두고 싶다. 새로운 곳을 향한 나만의 의식을.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
[살며 사랑하며-이혜진] 7월, 공항에서
입력 2014-07-11 0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