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半지하 서민, 여름만 되면 ‘半지옥 살이’

입력 2014-07-11 03:12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성균관대 4학년 송모(26)씨는 요즘 계절학기 수업이 모두 끝나도 해가 다 지기를 기다렸다 집에 돌아간다. 다세대주택 반지하방에서 자취하는데 집에선 이 여름을 견디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는 9일 “한여름엔 낮 동안 햇볕에 달궈진 방안의 열기를 견디기 어렵고 장마철에는 방에 습기가 너무 많다”며 “지나가다 빤히 방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많아 창문을 열기도 쉽지 않아서 차라리 캄캄해진 뒤 귀가하는 게 여러모로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집을 옮기는 것도 여의치 않다. 군복무를 마치고 올해 복학한 그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을 주고 이 방을 구했다. 1층 이상으로 방을 옮기려면 월세를 배 가까이 올려줘야 한다. 그는 “반지하방 주민들에겐 여름이 가장 힘들다”며 “취업하면 집부터 옮기고 싶다”고 했다.

월세가 싼 반지하방은 대표적인 서민 거주 공간이다. 대학생 고시생 등 자취생활을 하는 1인 가구는 물론 어려운 형편에 값싼 보금자리를 찾는 대가족까지 반지하방에 거주하는 사람이 서울에만 30만8660가구나 된다.

이들에게 여름은 ‘잔인한 계절’이다. 열기·습기에 창문을 열어두면 행인들이 지나가다 ‘스윽’ 들여다보기 일쑤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을 몰래 촬영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창문을 향해 담배꽁초를 버리거나 침을 뱉기도 한다. 힘겹게 여름을 나는 이웃을 위해 서로 배려하는 매너가 절실한 계절이 9∼10일 폭염주의보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직장인 정모(45)씨는 서울 동대문구의 반지하 주택에서 아내와 중학생 딸,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몇 차례 집을 옮기려 했다. 여름인데도 장판 밑이 눅눅해 보일러를 틀어야 하거나 윗집에서 버린 오물이 화장실 배수구로 흘러나오는 등 환경이 열악해서다. 그는 “안방 창문 앞이 작은 골목인데, 중학생들이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정씨의 이사 시도는 수년 새 급격히 치솟은 전셋값 탓에 번번이 실패했다. 정씨는 “서울에서 방 두 개에 5000만원 하는 전세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은 이 집도 재계약할 때 전세금을 올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더 크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반지하방에서 생활하는 유학준비생 이모(28·여)씨도 “창문을 열면 흙먼지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쳐다보며 지나간다”며 “하루는 자다가 일어났는데 모르는 아저씨가 창밖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어 무서웠다”고 말했다. 지난달 3일 오후 10시쯤에는 한 남성이 서울 관악구의 주택가 반지하방 창문으로 혼자 사는 여성을 몰래 촬영하다 들키자 도주하는 사건이 있었다. 같은 달 24일 밤에도 바로 이웃 건물의 반지하방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돼 여성 주민의 피해신고가 접수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전국의 반지하 거주자는 51만7689가구로 총 가구수(1733만9422가구)의 3%를 차지했다. 특히 전·월세가 비싼 서울의 경우 전체 350만4297가구 가운데 30만8660가구(8.8%)가 반지하에 살고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매일 순찰을 돌지만 ‘몰카’ 범죄는 어두운 골목에서 조용히 발생하기 때문에 현장 검거가 쉽지 않다”며 “또 다세대주택이 많은 지역은 이웃이나 행인이 거주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