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靑·여·야, 대화정치 불씨 잘 살려 나가길

입력 2014-07-11 03:32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원내지도부의 10일 청와대 회동은 대화정치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현 정부 들어 청와대와 야당 간 대화 통로는 거의 막혀 있었다. 대통령의 독선과 야당의 과도한 대정부 공세, 여당의 무기력증으로 인해 정국은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지난해 9월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3자회동이 어렵게 성사됐으나 얼굴을 붉힌 채 헤어지면서 정국은 더 꼬이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이날 박 대통령과 여야 원내지도부가 각종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협력의 정치를 다짐한 것은 값진 결실이다. 당초 45분 정도로 예정했던 회동이 1시간25분간으로 훨씬 길어진 것은 대화가 꽤 진지하게 이뤄졌음을 말해준다. 박영선 원내대표 등 새정치민주연합 측이 악화된 시중 여론을 전하면서 국정운영 기조 전환과 소통 강화를 주문하고, 박 대통령이 일정 부분 수용 의사를 밝힌 것은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해 달라는 박 원내대표의 요청에 박 대통령이 “잘 알겠다. 참고하겠다”고 응답한 점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마친 상황에서 임명 여부가 전적으로 대통령 손에 달렸음에도 야당 요구에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박 대통령의 스타일 변화가 읽힌다. 김 후보자의 경우 부적격 사유가 워낙 명백한 만큼 야당 측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 대통령으로서 불통의 정치를 청산하는 상징적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회를 이끄는 원내지도부에 많은 요청을 했다. 정홍원 총리 유임 결정에 대한 이해를 구하면서 경제 활성화 법안과 정부조직법, 김영란법, 유병언법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했다. 4대강 사업 부작용에 대해 검토하고 대책을 세우겠다고 약속하는가 하면, 청와대가 주도하는 통일준비위원회에 양당 정책위의장의 참여를 요청하기도 했다. 정무수석 등을 통하지 않고 대통령이 이런 얘기를 직접 할 수 있다는 것은 대화정치의 큰 장점이다. 여야 지도부가 회동이 끝난 직후 주요 법안의 8월 중 처리에 전격 합의한 것이 그 예다.

이번 회동의 가장 큰 성과물은 뭐니뭐니해도 대화의 정치를 계속 이어나가기로 약속했다는 사실이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분위기를 띄운 것으로 보이지만 박 대통령이 원내지도부와의 정례 회동 의사를 밝힌 것은 예상밖의 일이다. 청와대와 국회가 수시로 머리를 맞대고 국사를 논의하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크나큰 기쁨이다.

이런 분위기를 잘 살려나가려면 여야 모두 정략에서 벗어나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선거 결과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특정 정파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경우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게 지금까지의 우리 정치였다. 대화정치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정상 궤도에 올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