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베르토 아제베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이 10일 한국의 ‘쌀 관세화(시장개방)’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면서 우리의 선택도 분명해졌다. 아제베도 총장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선택은 수입쌀에 관세를 부과하거나 WTO 회원국들과의 협상을 통해 관세화를 추가 유예하면서 이해당사국들에 보상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관세화 유예 종료, 즉 쌀 시장을 개방하든지, 아니면 개방을 유예하는 대가로 추가 보상의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일부 농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추가 보상을 하지 않으면서 쌀 시장 개방 시점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을 펴 왔으나 아제베도 총장의 언급으로 사실상 불가하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은 시장 개방이다. 정부도 내부적으로 이 같은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시장 개방을 미룰 경우 무엇보다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물량(MMA)이 올해 40만9000t에서 앞으로 최소 82만t으로 배 이상 늘어나 엄청난 재고 부담은 물론 재정적으로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WTO 회원국들과의 협상 과정에서 쌀 이외 품목 관세 인하, 동식물 위생 및 검역 기준 완화 등 다른 부문에서 상당한 양보를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수입쌀에 매기는 관세율이다. 국민일보(7월8일자 1면)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상·중품 쌀 관세율을 평균 396%로 검토하고 있다. 이는 쌀 시장 개방을 받아들이기로 한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가 요구하는 최소 관세율 400%에도 미치지 못해 앞으로 농민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일정상 오는 9월 말까지 WTO에 쌀 관세화 여부에 대한 정부 입장을 전달해야 된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는 등 소극적으로 일관하고 있다. 당초 지난 6월까지 입장을 표명키로 했다가 연기한데 이어 오는 30일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이후로 또 다시 공식 입장 발표를 미루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정략적 판단에 빠져 국가 중대사를 그르치고 있는 것이다.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측을 설득하고 이들의 의견을 수렴해도 시원찮을 판에 어차피 개방이 불가피한데 떠들어봐야 어떻게 하겠느냐는 오만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나 몰라라 하는 사이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범국민 전국궐기대회를 추진하는 등 국론은 분열되고 있다. 정부는 하루 빨리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농민단체, 정치권 등과 힘을 모아 협상력을 높여나가야 한다. 그것만이 쌀 시장 개방에 따른 후유증을 그나마 줄이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사설] “쌀 관세화 유예 종료가 곧 시장개방”이라는데
입력 2014-07-11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