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권명수] 품이 너른 어른에 목마르다

입력 2014-07-11 02:19

며칠 전 이중표 목사님 9주기 추모예배에 참석했다. 고인의 삶을 담은 짧은 동영상을 보면서 하늘나라로 가시기 전 병문안 갔던 기억이 불현듯 되살아났다. 병실의 이 목사님은 약 기운 때문인지 주무시다가 깨면 어쩌다 눈을 뜨시는 정도였다.

나는 힘겨워 하는 목사님을 위해 힘이 되어 드리지는 못했다. 다만 “목사님 기도하겠습니다. 힘내십시오!”라고 말씀드렸다. 마지막 병상을 지키는 사모님께도 충분한 위로로 마음을 읽어 드리지 못하고 병실을 나와 편치 않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목사님을 주님 품으로 보내드리고 나니 그분의 빈자리가 너무 컸다는 것을 절감하게 됐다. 강사 시절에 개인의 문제로 목사님을 뵙고 의논을 드린 적이 있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해 주시던 따뜻했던 사랑의 마음이 몹시 그리워진다.

한 집단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어른은 어느 정도의 식견을 갖추고 있다. 삶의 문제에 직면해도 언제나 교양과 지혜로 현명하게 대처한다. 자신이 손해를 볼지언정 인간과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는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 않는 사람이다.

보통 존경을 받는 어른은 대접을 받기보다는 상대를 인격적으로 대우해 준다. 상대를 권위로 누르기보다는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공평함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 도량 있는 사람이다. 상대의 실수나 잘못에도 불구하고 강점을 크게 보고 용기를 북돋아 주며 축복과 희망으로 격려해 준다. 떳떳하게 드러내면서 해도 될 일을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행동거지를 조심한다.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는 로마서 14장 15절 말씀을 행한다. 의견이 달라 갈등이 있을 때 서로가 ‘윈윈’할 수 있도록 길을 찾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어찌해도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낙심하지 않고 지금에 충실한다. 이런 품성들이 품이 너른 어른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 어른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많은 일들을 해결할 수 없는 문제(problem)로 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과제(task)로 전환시켜 풀어가도록 어른들이 도움을 준다. 그래서 어른은 그 존재만으로도 중요하다. 어른의 역할은 연령에 좌우되지 않는 듯하다. 자신이 약하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른으로 여기는 분과의 만남과 대화를 생각하게 되면 인생의 고단함과 무거운 어깨의 짐이 가벼워짐을 자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품이 너른 어른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고 안정된다. 그분과의 만남은 위로와 힘을 얻게 되고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기에 나는 요즘 어른에 목마르다. 그런데 그런 분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스스로의 품이 넓지 못해 그런 것은 아닐까. 그래서 먼저 자신부터 품이 너른 어른처럼 처신하려는 마음을 챙겨보면 어떨까. 나부터 맘 매무새를 다듬어 보지 않을 수 없다.

권명수 교수(한신대 목회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