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21) 엘리엇을 떠올리다, 에콰도르

입력 2014-07-12 02:49

땀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이마에서 쏟아지는 물방울은 눈가를 지나 한참 코끝에 매달렸다 ‘폭’하고 떨어진다. 서러움을 꾹꾹 눌러 담고 대꾼한 모습으로 걸음을 옮기면 이번엔 난데없이 소나기가 정수리를 치고, 칼바람이 매섭게 뺨을 후려친다. 쇠 신을 신은 것마냥 땅바닥만 보고 비슬비슬 걷다가 뭔가 모를 서운함에 힘겹게 고개를 들어보면 주위는 온통 거짓말처럼 하얗다.

산안개가 세상을 삼켰다. 하나님이 창조한 대자연은 아름다울 때가 많았지만 두려울 때도 있다. 2008년 10월 일곱 개의 가방을 자전거에 주렁주렁 매달아 안데스 산맥을 오르내리는 내겐 두려웠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끝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난 왜 이 오지의 산길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가. 안데스를 오르기 전에 가졌던 묵직한 묵상을, 그 결연했던 마음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었다.

아아, 에콰도르를 가기 전 나는 한 선교사의 서재에서 선교에 뜨거운 사명을 가진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여다본 기억이 있다. ‘전능자의 그늘’, 하나님의 복음 전파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자 소명임을 알려준 평전이었다. 그 책은 내 안에 격랑을 일으켰다. 그 속엔 스물아홉의 선교사 짐 엘리엇의 헌신이 기록돼 있었다. 비슷한 나이대의 나. 철없는 ‘날라리’ 그리스도인이다.

1956년 그가 와오다니 부족을 만나러 가는 날, 어떤 마음이었을까. 당시까지 이 부족을 만난 뒤 살아남은 백인이 없었다. 짐은 두려웠을까, 설레었을까, 막막했을까. 순교를 앞둔 찰나, 그는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했을까. 복음에 대한 사명과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가 삶과 믿음의 중심에 있었을 것이다. 그는 부족 선교를 위해 산맥으로 들어왔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이었다.

그 죽음을 직감한 순간,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올라가는 바로 그 심정 아니었을까. 십자가가 무거워 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무지한 죄 때문에 울었을 것이다. 예수의 눈물처럼, 마치 스데반의 기도처럼. 그 부족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긍휼함으로 담담히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나는 엘리엇의 마음을 안고 이 길에 올랐다. 에콰도르의 한 선교지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비록 안데스 산맥을 넘는 중간에 도적에게 컴퓨터와 노잣돈을 뺏겼지만 내가 가야 할 곳의 목적지는 그대로 있다. 그곳에 내가 만나야 할 영혼들이 있었다. 중요한 건 잃어버린 물건이 아니라 잃지 말아야 할 마음이다.

수통을 꺼내 미친 듯이 물을 마셨다. 비가 오는데도 이렇게 갈증이 날 수 있나 싶었다. 복음에 대한 갈망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를 악물고, 무릎의 통증을 참아가며 걸음을 옮겼다.

엘리엇이 사랑한 땅, 에콰도르에는 아직도 예수를 모르는 많이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 나는 엘리엇이 흘린 순교의 피가 수많은 선교사들의 가슴을 흔들었다고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엇과 그의 친구들의 전심을 받으셨다. 얄팍한 믿음과 헌신으로는 흉내 내지 못할 헌신이다. 그래서다. 그러니 포기를 포기하고 다시 두 바퀴를 굴려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땀방울을 흘려 선교지에 도착하면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고, 광야에서 아끼고 아낀 아주 작은 마음으로 그들의 어려움을 돕자. 이것이 광야에서 나에게 맡겨진 사명이다.

안데스를 오르는 내내 나는 엘리엇의 마음을 헤아려보려 애썼다. 희미한 안개 속에서도 한 가지만은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은 바로 당신을,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작가·vision-m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