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바둑 소재 영화·드라마 인기… 반상의 승부, 킬러 콘텐츠 될까

입력 2014-07-10 03:51
최근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잇따라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영화 ‘스톤’의 한 장면. 씨너스 엔터테인먼트 등 제공
가로 세로 19개의 줄. 그 줄이 만든 361개의 점 위에서 흑돌과 백돌 간 접전은 뜨겁고 집요하다. 공격과 수성이 있고, 다음 수를 노린 의도적인 퇴각도 있다. 집을 만들고 허무는 과정에서 판 위 돌들은 살거나 죽는다. 바둑이 인생에 비유되는 이유다.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잇달아 제작돼 주목받고 있다. 최근 2편의 영화가 개봉한 데 이어 하반기엔 인기 웹툰 ‘미생’이 드라마로 재탄생한다. ‘내기 바둑’ ‘프로를 꿈꾸는 아마추어’ ‘바둑으로 비유한 직장생활’ 등 바둑을 소재로 한 점에서는 같아도 풀어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국내 최초 바둑 영화’란 타이틀을 달고 지난달 12일 개봉한 영화 ‘스톤’(감독 조세래). 천재 아마추어 바둑기사인 민수(조동인 분)가 폭력조직의 보스 남해(김뢰하 분)의 바둑 선생이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프로를 꿈꾸는 아마추어들의 교감이 돋보인다.

바둑 소설 ‘승부’의 저자이면서 오랫동안 바둑 소재 영화를 기획해 온 감독 덕분에 현실감이 뛰어나다. 조 감독이 지난해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스톤’은 그의 유작이 됐다.

바둑의 승부사적 특성을 강조한 작품은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신의 한 수’(감독 조범구)다. 프로기사 태석(정우성 분)과 살수(이범수 분)가 복수를 꿈꾸며 내기 바둑에 나서는 범죄 액션 영화다. 배우 정우성 이범수 안성기 등 화려한 캐스팅에 실감나는 액션신이 입소문을 탔다. 9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개봉 6일째인 지난 8일 기준 149만 관객을 불러, 박스 오피스 1위 자리에 올랐다.

오는 10월 방영 예정인 케이블 채널 tvN 드라마 ‘미생-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는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직장 생활의 바이블’로 불린 동명 원작(작은 사진)의 인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크다.

프로기사 입단에 실패한 청년 장그래가 대기업 종합상사에 일하면서 경험한 에피소드를 바둑판 위에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지난해 모바일 영화 ‘미생 프리퀄’이 제작된 데 이은 두 번째 변신. 당시 장그래 역을 맡았던 임시완이 다시 한 번 물망에 오르고 있다.

CJ E&M 관계자는 “장그래의 직장 동료 안영이 역에는 강소라가, 완벽한 스펙을 자랑하는 신입사원 장백기 역에는 강하늘이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죽도록 일하지만 출세하지 못하는 만년 과장 오상식 역에는 이성민이 확정됐다. 오는 10월부터 20부작 금토드라마로 편성된다.

바둑이 대중문화 콘텐츠의 소재로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평론가들은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신선한 소재라는 점, 바둑판 위에 삶을 대입시켜 다양한 인생사를 풀어낼 수 있다는 점 등을 꼽았다.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바둑은 그간 성인 만화와 소설 등에서는 다뤄졌지만 영화의 소재가 된 건 최근”이라며 “소재의 신선함이 흥미를 끄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상덕 대중문화평론가는 “바둑은 한 수 차이로 지고 이기는 게임”이라며 “작은 실수와 운명에 따라 결과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인생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무궁무진한 재료가 된다”고 말했다.

또 “경쟁 관계 속에서 긴장감이 유발되지만 정적인 면도 갖추고 있어 제작자들에게 매력을 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