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가명·당시 10세·여)는 늘 혼자였다. 두 살 때 부모가 이혼했다.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는 집을 비울 때가 많았다. 새엄마는 지혜에게 오후 6시 전에는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아무도 없는 동네 당산나무 아래에서 혼자 놀았다. 밥 해주는 사람이 없어 남의 집 냉장고를 뒤졌다. 홀로 지내는 데 익숙해진 지혜는 사람을 잘 따랐다.
2012년 7월 16일 지혜는 혼자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실종됐다. 엿새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범인은 근처에 살던 이웃 아저씨였다. 학교까지 차로 데려다 주겠다며 지혜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성폭행을 시도했다. 반항하자 살해한 뒤 야산에 묻었다. 동네는 발칵 뒤집혔다.
지혜처럼 가정과 지역사회로부터 방치된 ‘나 홀로 아동’은 전국적으로 97만명에 달한다. 이런 아이들은 성폭행 등 각종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기 쉬워 정부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가 먼저 나 홀로 아동들을 찾아내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는 10일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 개소 10주년 기념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주제 발표를 맡은 정운선 경북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9일 미리 배포한 발제문에서 “기초생활수급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의 아이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오후 8시까지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보호자가 직접 등록하지 않으면 지원이 어렵다”며 “정부 차원에서 이들을 찾아내고 지원하는 적극적인 서비스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가해자 처벌에만 초점을 맞춘 성폭력 정책도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처벌만 강화하다보면 가해자가 사회와 격리돼 더 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동시에 피해자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어 지속적인 사후관리와 치료도 어려워진다. 김재련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도 “가해자 제재를 강화하는 것만이 성폭행을 줄이는 답은 아니다”라며 “교육과 치료를 통한 교정, 재범 방지와 사회 복귀를 돕는 정책적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포와 수치심 등으로 정확하게 자신의 심리상태를 표현하기 어려운 피해 어린이들을 위해 ‘성폭행 수면효과’를 고려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 교수는 “성폭행을 경험한 아동의 40%가 사건 직후 아무런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후속 피해가 커질 수 있어 2년 이상 장기간 추적조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나 홀로 아동’ 97만명… 지역 사회와 가정이 방치
입력 2014-07-10 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