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오전 8시에 열리는 삼성그룹의 수요 사장단회의는 그룹경영의 ‘좌표’를 찍는 모임이다. 미래전략실 팀장급 이상은 물론 계열사 최고경영자(CEO)가 모여 현안을 논의하고, 전략을 짠다. 각계 전문가를 초빙해 강연도 듣는다. 누구를 불러 어떤 내용을 들었느냐는 경영진의 관심사, 경영의 방향성 등을 직간접적으로 알려준다.
9일 서울 서초구 삼성사옥에서 열린 수요 사장단회의에는 이호욱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가 강사로 등장했다. 강의 제목은 ‘선도적 기업의 딜레마와 극복 전략’.
비공개 강연에서 이 교수는 시장을 선도하는 우량기업들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고객의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데도 망하는 역설적 현상을 소개했다. 이 교수는 “성공체험 때문에 스스로의 판단이 옳다고 믿고, 현재 보유한 기술과 시장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파괴적 혁신을 지속하지 못해 초래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석좌교수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이 쓴 책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읽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강연을 놓고 시장에서는 ‘성장 둔화에 직면한 삼성에 던지는 경고’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에 대해 이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전무)은 “강연 일정은 2개월 전에 이미 정해졌고 강연 내용이 삼성을 겨냥한 것임을 시사하는 이 교수의 언급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 팀장은 삼성서울병원에 두 달째 입원 중인 이건희 회장에 대해선 “안정된 상태에서 서서히 회복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이 회장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사업·지배구조 개편 등에 속도를 내며 안정적으로 경영을 하고 있다. 다만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마하경영으로 불리는 경영혁신을 이뤄내는 것은 여전히 숙제다.
김찬희 기자
延大 이호욱 경영학과 교수 “현실에 안주해 파괴적 혁신 지속 못하면 퇴보”
입력 2014-07-10 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