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는 물보다 쓰레기가 많았다. 과자봉지, 플라스틱 음료수병, 캔, 스티로폼, 종이박스, 비닐팩 등이 바다를 뒤덮었다. 청록빛은 오간 데 없고 잿빛 일색의 바다였다. 강렬한 태양에 썩어가는 쓰레기 더미에는 온갖 벌레들이 서식했다. 악취가 심하지 않다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쓰레기와 사람이 함께 살고 있는 이곳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10㎞가량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나보타스(Navotas)시다. 가난한 도시 빈민들은 땅 대신 나보타스 서쪽 바다 위에 자리를 잡고 ‘판자촌’을 만들었다. 이들은 쓰레기 바다에 지름 15㎝가량의 나무 기둥을 박고 그 위에 합판을 올려 집을 꾸렸다. 이곳에는 5000여명이 살고 있다.
지난 4일 한국인 신학생 9명이 나보타스를 찾았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교육훈련원의 11차 에큐메니컬 신학생 해외훈련에 참여한 이들은 판자촌에 도착하자마자 양손에 회색 장갑을 꼈다. 바닥 합판이 갈라져 무너질 위험이 큰 집 4곳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나보타스에서 선교하고 있는 박선호(필리핀 탄사교회) 선교사의 지시에 따라 각목과 합판을 들고 판자촌에 들어갔다.
일은 만만치 않았다. 각목과 합판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부터 문제였다. 판자촌 중심부로 이어지는 골목은 사람 1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나무를 성글게 엮어 만든 도로는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넘어질 만큼 위험했다.
힘겹게 자재를 나른 학생들은 현지 목수들과 함께 각목과 합판을 잘랐다. 여학생들은 각목과 합판을 잡았고 남학생들은 톱질을 시작했다. 이후에는 각목으로 바닥 지지대를 설치했다. 바닥을 뜯어낸 상태여서 발을 헛디디면 곧바로 쓰레기 바다로 빠질 위험이 높았다. 학생들은 지지대 위에 합판을 올리고 못으로 고정해 수리를 마무리했다. 작업은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이어졌다. 눅진한 더위에 학생들은 땀범벅이 됐다.
집수리를 받은 테리 시타(39·여)씨는 학생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고 손을 일일이 잡으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그는 “자녀 셋과 함께 살기에 너무 위험했는데 이제는 조금 안전할 것 같아 기쁘고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베푼 것보다 배운 것이 더 많다고 입을 모았다. 박희진(31·여·호남신학대)씨는 “오기 전에 글과 사진을 봤는데도 (와서 보니) 충격이 컸다”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순수하고 밝은 미소를 짓는 이곳 사람들을 보며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정연(32·여·장로회신학대)씨는 “이곳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니 이제껏 살며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어떻게 살고 어떤 곳에 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과 내가 만나고 있느냐가 더욱 중요한 일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나보타스(필리핀)=글·사진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
‘쓰레기 바다’ 그 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네
입력 2014-07-10 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