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희망의 씨앗을 뿌려주세요] (2) 유미숙 강남행복의집 원장

입력 2014-07-10 02:13
서울 강남구 논현로에서 만난 유미숙 강남행복의집 원장. 그는 “내게 신장을 기증한 익명의 기증자를 잊을 수 없다. 그분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유미숙(49·여) 강남행복의집 원장의 20대 시절은 파란만장했다. 그는 겨우 스물세 살이던 1988년 출판사를 차리며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유 원장은 회사를 성공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었다. 야근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런데 그해 겨울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신장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그는 만성 신부전증 진단을 받았다. 이듬해 5월부터는 투석까지 받는 신세가 됐다.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로 강남행복의집에서 만난 유 원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80년대만 하더라도 신장병은 ‘돈(병원비)만 쓰다 결국 죽게 되는 병’이었어요. 저 역시도 ‘내 인생은 끝났다’며 자포자기했죠. 6개월 넘게 누워만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어떻게든 병상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92년 아버지의 신장을 이식받았다. 불효를 저지르는 것 같아 계속 거절했지만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는 “수술이 끝나고 아버지가 ‘딸 괜찮아?’라고 묻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건강을 되찾은 유 원장은 활동을 재개했다. 레코드가게 식당 인재파견업체…. 무수히 많은 사업을 벌였다. 일에 전념하느라 결혼 생각도 없었다. 사업에 매진한 건 새로운 꿈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병원 생활을 하며 많은 장애인을 만났어요. 그들의 고충을 듣다가 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을 짓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유 원장은 이식받은 신장 상태가 안 좋아져 2004년 또다시 이식수술을 받았다. 이번엔 익명의 기증자였다. 이식수술을 두 번이나 받게 되니 장애인을 위해 살고 싶다는, 나눔의 뜻을 실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오갈 데 없는 장애인을 위한 ‘그룹홈’(공동생활가구)이 떠올랐다.

“우리 주변에는 장애 때문에 직장을 잃고 가정까지 파괴된 사례가 많습니다. 이들을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2009년 2월 서울 중랑구 중화동에 ‘햇살가득한집’이라는 그룹홈을 만든 게 시작이었습니다. 자리를 옮겨 강남행복의집을 운영한 건 2012년 2월부터고요.”

강남행복의집엔 현재 지적장애인 4명, 신장장애인 1명이 살고 있다. 식사는 유 원장이, 청소나 설거지는 입소자들이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월세와 생활비는 후원금과 입소자들이 매달 내는 소정의 금액으로 충당한다.

“1년 365일 하루도 쉴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지내왔어요. 힘들 때가 많지만 보람도 정말 큽니다. 앞으로도 이 친구들과 동고동락하며 살고 싶어요(웃음).”

유 원장은 인터뷰 내내 우리 사회에 장기기증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유교 문화 때문에 장기기증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며 “그러나 장기기증은 생명을 나누는 가장 큰 방법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이 캠페인은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에서 지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