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순애 (5) 하나님! 방과 일터, 기도자리를 만들어주세요

입력 2014-07-11 03:40
지난해 12월 황교안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30년간 교정행정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표창장을 받은 박순애 전도사가 의정부교도소 관계자, 교정위원들과 함께 했다. 오른쪽부터 양동석 의정부교도소 사회복지과장, 박 전도사, 김명철 교도소장.

축복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축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축복을 받을 준비가 된 사람만이 보이는 축복까지 ‘덤’으로 받을 수 있다. 이게 하나님의 방법이다.

나는 19세에 성령 체험을 한 순간부터 축복을 받았다. 물론 주변에선 그렇게 보지 않는다. 내 손에 쥐어진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매일 새벽 열심히 기도드리고 집에 가도 역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절박한 상황에서의 기도는 생명줄이라고. 믿음의 눈에는 그 길만이 생명이다. 그래서 조금만 참고 견디면 반드시 응답받는다. 나 역시도 처절한 시간들을 견뎌냈다. 그러자 축복은 고난의 포장지에 쌓여 다가왔다.

내가 서울에 온 건 1989년 12월이다. 새벽예배를 드리던 어느 날, 창세기 12장 1∼2절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왔다. “너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겠다.”

낯선 땅 서울에 올라와서는 문 열린 교회를 전전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는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을 부여잡고 새해를 맞았다. ‘예배당 떠돌이’로 살면서 세 가지를 놓고 기도했다. “하나님 방을 주세요, 일터를 주세요, 교회에 제 자리터 만들어주세요.”

두 달 만에 공장에 취직했고, 월세 5만원 하는 방을 얻었다.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교회 강대상 바로 앞자리는 내 무릎 기도터였다. 예텃골에선 험한 산길을 2시간씩 걸어 교회에 갔는데, 서울에선 가까운 곳에 교회가 있으니 모든 게 감사했다. 공장에서 보름치를 가불하고 1만원을 첫 십일조로 드리며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기도는 이렇게 먼저 달려가는 축복이다. 먼저 심어놓은 축복이다.

최고 많은 십일조, 최고 많은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게 해달라는 기도제목은 언제나 변함없었다. 하나 더 추가해 무릎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교회학교 교사가 되게 해주세요.” 구룡포교회 그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열정을 보신 목사님께서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우리 반 아이들이라며 다섯 아이 이름이 적힌 종이를 건네받았다. 등록만 해놓고 나오지 않는 학생들이었다. 일일이 찾아가 교회에 나올 것을 권면했다. 아이들을 전도하는 데는 자장면만한 게 없었다.

공장에서 그때 받은 월급이 22만6000원. 십일조 3만원, 감사헌금 2만원, 월세 5만원, 한달 생활비 2만6000원을 제하고 나니 10만원이나 남았다. 구하지 않는 돈이 왜 남았을까. 이 돈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한번도 나를 위해 돈을 모아본 적이 없다.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다 드렸다. 그래서 남은 돈도 하나님께 어떻게 드려야 할지를 고민하던 중이었다.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자장면을 먹이며 전도했다. 아이들은 “선생님, 친구 데려오면 자장면 사주실 거죠?”라며 친구들을 데려왔다. 전도할 친구들 이름을 세 명씩 적게 하고 데려오면 학용품 같은 선물도 줬다. 아이들이 적어낸 이름을 매일 새벽마다 부르며 간절히 기도했다. 석 달 만에 18명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10만원은 우리 반 아이들 자장면 값으로 모두 사용했다.

사람들이 나를 볼 땐 비정상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엔 이게 축복이었다. 나는 스스로 조금 부족하게 살고자 마음먹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에게 오셔서 나를 완벽하게 채워주심을 믿었다. 내가 완벽해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나님 보시기엔 그게 아름다운 거다. 부족하고 모자란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채워주시는 것. 10만원은 기적의 씨앗이었다. 부족한 내 삶을 채우고도 남았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