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선 눈길을 끌지 못했지만 얼마 전 미국에서는 ‘보물찾기’ 광풍이 불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 도시에서 현금 봉투를 어딘가에 꼭꼭 숨겨 놓고 트위터로 숨긴 장소에 관한 힌트를 주는 보물찾기 놀이가 벌어진 것이다. 20달러부터 50달러, 100달러 지폐가 담긴 하얀 봉투가 망가진 공중전화 부스나 지하철역, 전봇대, 동네 커피전문점, 공원 벤치 등에서 발견됐다. 중고 레코드 가게의 LP 레코드 재킷 안에서도 돈이 나왔다.
시민들은 열광했다. 트위터에 글·사진·동영상을 올려 힌트를 주고 사람들이 보물을 찾아내도록 한 ‘히든캐시’(@HiddenCash)의 팔로어 수는 2주 만에 50만명에 육박했다. 언론은 그가 누군지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근교 팰로앨토에 사는 부동산 개발업자 겸 투자가 제이슨 부지가 주인공임을 밝혀냈다. 부지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번 돈의 일부를 재미있는 방법으로 사회에 되돌려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또 다른 선행을 베풀도록 용기를 북돋워주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 보물을 찾은 이들은 아버지에게 용돈을 주거나 다른 사람을 위해 쓰겠다고 했다.
심각한 富의 편중 현상
보물찾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보물을 찾아 돌아다니는 보물 사냥꾼도 적지 않았지만, 학창 시절 소풍 때 선생님이 소나무 밑에 숨겨 놓은 ‘연필과 노트 교환용 보물 쪽지’를 발견하고 신이 났던 이들이 훨씬 많다. 보물선, 보물섬이 그 실체 여부를 떠나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김대중정부 때 ‘보물선 게이트’까지 나왔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자연 상태’의 보물을 찾기가 쉽지 않아졌다. 그러기에는 소수의 나라와 소수의 부자들이 너무 많이 차지해 버렸다.
최근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토마스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론(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보물’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수백 년치의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자본의 수익률이 성장률보다 커지면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모든 나라들이 정책 공조를 통해 자본에 대한 누진적인 과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케티가 가설을 제대로 세우지 않았다는 논란은 있지만, 그의 책이 단기간에 화두가 됐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현 자본주의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돼 있다는 얘기 아닐까?
다시 보물찾기로 돌아가 보자. 제이슨 부지가 치기어린 행동을 했다고 비난하는 측도 보물을 숨기고 찾는 그 순간의 희열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옛날 소나무 밑에서 찾아낸 쪽지를 들고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던 경험을 해본 이들에게는 더욱 더 그렇다.
돈은 貧者들에게 흘러가야
에티오피아의 11살 소년 E는 월드비전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보물을 찾았다. 고교 2학년 H군은 5년 전 중학교 입학 때부터 매월 용돈을 아껴 그를 후원하고 있다. 3만원은 E군에게 생활비는 물론 학교를 다니며 꿈을 키울 수 있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는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내가 가진 보물을 누구에게 줄지 모르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부(富)는 물처럼 흘러야 된다. 한 곳에 정체돼 있으면 부패해 버린다. 선진국의 거대 자본은 개발도상국으로, 부자들의 돈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흘러가야 전 세계가 하나의 생명수와 같이 살아 숨쉬게 된다.
태풍이 몰려오는 무더운 여름밤에 시원하고 거대한 한판의 보물찾기 소동을 그려본다. 숨긴 이와 찾은 이의 행복한 얼굴을 떠올려보면서….
한민수 외교안보국제부장 mshan@kmib.co.kr
[데스크시각-한민수] 보물찾기
입력 2014-07-10 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