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농민신학자 찰스 아빌라 박사 “땅은 공동의 것… 기독인이 불평등 고리 끊어야”

입력 2014-07-10 02:26
필리핀 신학자 찰스 아빌라 박사가 지난 1일 필리핀 퀘존 필리핀기독교교회협의회 세미나실에서 한국 신학생들에게 빈곤과 불평등 문제 해결의 중요성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기준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준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기독교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지난 1일 필리핀 퀘존 필리핀기독교교회협의회(NCCP) 세미나실에서 만난 필리핀의 저명한 농민신학자 찰스 아빌라 박사는 ‘예수님의 기준’을 인터뷰와 강연 내내 강조했다. 우리 사회의 각종 문제들은 모두 예수님의 기준대로 살지 못해 생겼다는 뜻이다. 그는 미국 유학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 김지하 시인 등과 함께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했고, 초대교회의 경제사상을 다룬 저서 ‘소유권’의 한글 번역판이 나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아빌라 박사는 현대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빈곤’을 꼽았다. 그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가난한 친구들을 보면 게으르고 멍청해서 그런 줄 알았다”며 “실제로 만나 보니 부지런하고 똑똑한데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기독교인이 빈곤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면 잘못 가르친 것”이라며 “왜 누구는 가난하고 누구는 부자가 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교육훈련원 에큐메니컬 해외훈련에 참여한 한국 신학생들에게도 ‘필리핀 문제의 뿌리와 하나님의 선교’라는 강연을 통해 빈곤과 소유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필리핀의 가장 큰 문제는 10%의 국민이 90%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며 “땅은 하나님이 주신 공공의 것인데 여기서 나온 수익이 모두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가 땅을 사유화하려 하자 ‘하나님이 준 공동의 소유’라며 격렬히 반대했다”면서 “우리는 초대교회를 꼭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빌라 박사는 초대교회 이후 2000년 넘게 기독교인들이 사유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불평등이 심화됐다고 밝혔다. 그는 “부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정치와 문화까지 부에 의해 지배당하게 됐다”며 “필리핀에서는 미국의 식민지배를 통해 이 같은 현상이 더 심화됐다”고 설명했다. 필리핀 경제를 장악한 미국은 필리핀의 전통문화와 생산물에 대해 부정적이고 저급하다는 생각을 조장했고 기독교인들이 이를 묵인함으로써 오히려 미국이라는 새로운 우상을 섬기게 됐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부의 편중과 독점도 심해져 빈곤과 불평등이 필리핀에 뿌리내렸다. 그는 “필리핀의 빈곤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소유권 문제부터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아빌라 박사는 한국에서도 소유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모두의 이익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대의 희년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며 “하나님의 제자들이 먼저 무엇이 정의인지 이해하고 대중의 생각을 바꾸려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고 밝혔다.

아빌라 박사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희생을 보여 주기를 희망했다. “예수님은 배고플 때 먹이고, 목마를 때 물을 주는 분이셨습니다. 영적 철학적 고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내주시는 분이셨어요.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희생을 통해 2000년 동안 이어진 불평등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퀘존(필리핀)=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