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4일 한국을 국빈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박근혜 대통령은 그야말로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 관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특히 박 대통령과 시 주석 부부가 참석한 3일 국빈만찬, 4일 특별오찬은 한·중 간 ‘신 밀월(蜜月) 관계’를 체감하는 기회였다는 평가다. 화기애애한 만남의 하이라이트였던 셈이다. 시 주석은 자신의 식성을 배려한 만찬 메뉴와 한·중 양국 문화를 접목시킨 공연에 큰 만족감을 나타냈다. 시 주석 내외는 우리 측 환대에 진심어린 사의(謝意)를 수차례 표했다.
하지만 그게 정상 간 만남의 전부였을까. 두 정상 사이에 이뤄진 환대와 사의 이면에는 치열한 ‘외교적 수싸움’이 존재했다. 국빈만찬 전 이뤄졌던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정상회담장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고 한다. 이 자리에선 두 정상 사이에 날카로운 대화들이 이어졌다.
시 주석은 회담 중 먼저 박 대통령에게 중국이 창설을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에 한국이 참여할 것을 공식 요청했다. 미국 중심의 아시아개발은행(ADB),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응하는 체제에 가입하라고 압박을 가한 셈이다. 동북아 다자 경제협력의 주도권을 중국 측으로 끌어오기 위한 의도된 발언이다. 정부 소식통은 8일 “우리 정부도 고민되는 사안인데, 시 주석이 직접 대통령에게 이를 언급한 것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 측은 ‘공감하며 평가한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시 주석은 박 대통령에게 ‘돌발제안’도 했다.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와 한반도 광복 70주년을 맞는 내년에 ‘항일 기념식’을 공동 개최하자고 불쑥 꺼낸 것이다. 전혀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돌발 의제여서 우리 측 외교라인까지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본격적인 ‘한·중 대 일본’ 구도로 비치는 만큼 외교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사안인 탓이다. 박 대통령은 즉석에서 답변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이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시 주석의 제안은 중국 관영 CCTV를 통해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특별오찬을 통해 “한국에서도 의미 있는 행사를 준비하려 한다”며 완곡한 사양의 의미를 전달했다. 두 정상이 재개하기로 합의한 한·중 해양경계 획정협상도 폭발력 있는 사안이다. 일부 중첩되는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대한 본격적인 영역다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시 주석의 서울대 강연 역시 많은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시 주석은 공식 기자회견과 만찬·오찬에서 보여준 여유롭고 후덕한 모습과 달리 강연에선 일본에 날선 공세를 가했다. 방문국 연설을 통해 제3국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것 자체가 외교적으로는 매우 이례적이다. 우리에게 대일(對日) 대응에 동참하라는 의미가 컸다는 것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정상회담에 대해 언제나 “성공적인 회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장 성공적인 동맹으로 평가받는 한·미 양국의 정상회담에서도 실패 사례는 있었다.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은 갓 취임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 햇볕정책을 설파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은 김 대통령을 옆에 두고 “북한 지도자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또 김 대통령을 “이 사람(this man)”으로 부르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2005년 11월 경주 정상회담은 두 정상이 대북 금융제재 문제를 놓고 1시간 이상 설전을 벌인 사상 최악의 회담이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정치 인사이드] 화기애애한 ‘1박2일’… 막후에선 치열한 수싸움
입력 2014-07-09 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