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그날! 이런 정부, 이런 공무원] 무능·비리·면피… 부끄러운 민낯

입력 2014-07-09 03:30
정길영 감사원 제2사무차장이 8일 오전 감사원 별관 대회의실에서 ‘세월호 참사 대응실태’ 감사 중간결과를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 5월 14일부터 6월 20일까지 50여명의 감사인력을 투입,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 안전행정부 등 세월호 사고 대응 전반에 대한 감사를 벌였다. 이동희 기자

우리들의 기억에 2014년 4월 16일은 대한민국의 안전이 침몰한 ‘국치일(國恥日)’이다.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로 300명에 가까운 고등학생과 시민들이 수장(水葬)된 그날을 잊지 못한다. TV에서는 90도 이상 기울어져 바닷속으로 사라져가던 세월호의 뱃머리 모습이 하루 종일 흘러나왔다. 대체 왜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지, 왜 어린 학생들이 수장되고 있는 모습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답답하고 속이 상해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때 거기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오전 8시50분 빠른 물살에 급회전하던 세월호가 기울어져 바닷속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전남 진도 근처 공해상에서 활동하던 선박은 전부 합쳐도 82척. 그 가운데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특별 관제 대상’ 대형 선박은 18척밖에 되지 않았다. VTS 직원들이 제대로 관제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면 사고가 시작되던 시점부터 이를 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다.

그런데 VTS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정규 인원 2명이 있었어야 할 진도VTS에는 단 한 명의 직원밖에 없었고, 그는 16분이나 지난 9시6분쯤에야 사고 사실을 알았다. 그것도 관제 모니터를 통해서가 아니라 승무원과 승객들의 구조 무전을 받은 목포해경으로부터 통지를 받아서였다. 졸았거나, 아니면 지켜야 할 자신의 근무위치에 없었던 셈이다.

진도VTS는 이때부터 오전 9시37분까지 세월호와 단독 교신했다. 승무원들이 승객을 이동시키지 않는 상황을 파악했지만 이를 현장 구조대에게 제대로 전달하지도 않았다. ‘피같이’ 소중했던 사고 발생 초기 시간을 그냥 날려버린 것이다.

구조대 출동 요청을 받은 해경은 더 한심했다. 원래 ‘내해구역’인 이 바다에는 반드시 200t 이상급 중형 해경함정이 배치돼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날 해경은 중국어선 불법조업을 특별 단속하겠다며 이 지역의 모든 중형 함정을 다 동원했다. 근처 바다에서 그나마 구조에 나설 수 있던 해경 소속 선박은 123t급인 소형 경비정 한 척이 유일했다. 이 경비정이 도착하자마자 한 일이라고는 갑판에서 뛰어내리는 선장과 승무원들을 구조하고 갑판에 있던 학생들을 경비정에 태운 것뿐이었다. 우왕좌왕할 뿐 선실에 갇힌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리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사고 발생 2분 뒤에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으로부터 맨 처음 신고를 받았던 전남소방본부는 ‘해상사고는 해경 소관’이라며 21분을 흘려보낸 뒤에야 소방헬기 출동 지시를 내렸다. 더구나 이 헬기는 전남소방본부장이 전남 행정부지사를 태우려고 시간을 또 허비했다. 현장에 헬기가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37분. 이미 배의 3분의 1 이상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상태였다. 목포122구조대는 사고 직후 출동했지만 해경 전용부두에 정박 중인 513함(상황대기함) 대신 버스와 어선을 타고 가느라 낮 12시13분 현장에 도착했다.

지난 4월 16일 당시 진도 앞바다를 지나던 세월호는 이미 총체적인 부실덩어리였다. 선박의 도입과 검사, 안전점검, 관리·감독에 이르기까지 비리와 책임회피가 쌓이고 쌓인 채 항해하고 있었던 셈이다. 애당초 세월호는 인천∼제주 항로에 투입될 수 없는 배였다. 운항 승인 자체가 인천지방해양항만청의 부실업무로 이뤄졌고, 복원성과 고박조차 제대로 점검되지 않은 상태였다.

원래 선박 증선은 해당 항로의 평균 운송수입률이 25% 이상 유지될 때만 인가가 가능하다. 그런데 인천항만청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이 배의 성능을 조작해 제출한 계약서를 근거로 2011년 9월 세월호 증선을 허가했다. 여객 정원과 재화 중량을 모두 위조한 서류 한 장만 믿은 셈이다.

해경 간부 3명은 지난해 2월 제주 출장을 명목으로 청해진해운 측으로부터 교통편의와 식대, 주류, 관광 등의 향응을 받았다. 며칠 뒤 이들은 세월호 운항관리규정 심사위원회가 열리자 제대로 서류조차 검토하지 않은 채 이를 그대로 통과시켜줬다. 청해진해운 측은 심사위에 선박복원성계산서 등 가장 기초적인 서류조차 내지 않은 상태였다. 한국선급의 복원성 검사도 엉터리였고, 해운조합 역시 사고 당일 출항하기 전 화물중량과 적정 차량대수, 고박상태를 점검도 하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부정(不正)이 한꺼번에 폭발하듯, 세월호는 방만과 보신주의에 빠진 공무원·공공기관, 돈벌이에만 눈이 먼 사기업의 허위를 모두 껴안은 채 바닷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구린내가 펄펄 나는 세월호에 침몰은 어쩌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로 인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희생됐다. 아직 피지 못한 10대 소년소녀들, 아빠와 엄마, 귀여운 아이들, 꽃다운 청년, 중국인 관광객….

여기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와 장비를 갖고도 이들을 구조하지 못한 책임자들도 있다. 진도VTS부터 해경, 항만청, 해양수산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부 조직이 주먹구구식이었다. 감사원은 5∼6월 50여명의 감사인력을 투입해 ‘세월호 침몰사고 대응실태’ 감사를 벌인 결과 40여명의 공무원을 적발해 소관부처에 징계를 요구했다고 8일 밝혔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