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개의 폭포로 이루어진 소금강 구룡폭포의 천둥소리에 놀란 금강송이 가늘게 떤다. 전날 내린 장맛비로 수량이 한껏 불어난 때문일까. 용이 꿈틀대는 듯 선녀탕에서 목욕하던 선녀의 옷자락이 흘러내리는 듯 폭포수가 너무 깊어 검은 소(沼)를 향해 하얗게 쏟아진다. 만물상을 비롯한 소금강 계곡의 절경을 주유한 청류가 구룡폭포의 마지막 소에서 잠시 호흡을 고른 후 445년 전 율곡이 감탄사를 남발했던 그 계곡을 달려 강릉바다로 초하의 여행을 떠난다.
청학동에는 정말로 청학(靑鶴)이 살고 있을까? 오대산 노인봉 동쪽에서 발원한 청학천이 연곡천과 합류해 동해로 흘러드는 강원도 강릉시 연곡동의 청학동 소금강 계곡은 기암괴석과 층암절벽, 폭포, 소 등이 두루마리 산수화처럼 펼쳐지는 절경으로 1970년 국가명승 제1호로 지정됐다.
오대산국립공원의 높은 산줄기 사이를 흐르는 13㎞ 길이의 소금강 계곡에는 식당암 등 거대한 암반과 만물상 등 기암괴석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전봇대처럼 쭉쭉 뻗은 금강송과 울창한 숲, 집채만한 바위와 그 사이를 흐르는 청류, 그리고 크고 작은 폭포와 소가 오르면 오를수록 진경산수화를 연출한다.
소금강이라는 이름은 강릉이 낳은 대학자 율곡 이이의 글에서 유래됐다. 1569년 초여름 벼슬을 그만두고 강릉으로 내려온 율곡은 연곡천을 거슬러 올라 청학동 계곡을 찾는다. 그리고 그 감흥을 담은 ‘유청학산기(游靑鶴山記)’라는 기행문에 “청학동 계곡의 빼어난 산세가 마치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며 소금강(小金剛)으로 명명한다.
소금강은 단순히 이름만 빌려온 게 아니라 실제로 금강산과 닮은 형상도 여럿이다. 소금강 구룡폭포는 금강산 구룡폭포와 닮았고, 소금강 만물상은 금강산 만물상과 흡사하다. 소금강 연화담도 금강산 연주담과 비슷해 금강산의 비경을 구경하지 못했다면 소금강에서 대리만족을 해도 부족함이 없다.
율곡이 “길가의 수석이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기이하고 눈이 어지러워 다 기록할 수 없다”고 한 계곡 구간은 안타깝게도 길이 없어 오대산국립공원 소금강분소까지 아스팔트 포장길을 에둘러야 한다. 구절양장 잣고개를 넘어 만나는 산촌에서 허름한 초옥과 물방아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지만 율곡이 감탄한 봉우리의 푸른 기운은 여전하다.
소금강 분소부터는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초록물이 뚝뚝 떨어지는 등산로 아래 금강송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계곡에는 산복숭아나무와 산벚나무 꽃이 만개하면 무릉도원처럼 아름답다는 무릉계가 자리잡고 있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십자소와 연화담은 피톤치드 그윽한 숲길이 계곡과 가까워지는 곳에 있다.
율곡은 푸른 낭떠러지가 오이를 깎아 세운 듯하고 떨어지는 천류가 백설을 뿜어내는 소를 ‘창운(漲雲)’이라고 불렀다. 유람기의 탐방 코스로 미루어 짐작컨대 십자소나 연화담이 창운이겠지만 유람기에서 묘사한 감동은 느껴지지 않는다. 등산로나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계단에서는 계곡을 거슬러 오르던 율곡의 감회를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맑은 계류가 암반을 미끄러져 푸른 담을 이루는 연화담을 지나면 소금강 내에 있는 유일한 사찰인 금강사에 이른다. 금강사 주변에는 전봇대처럼 쭉쭉 뻗은 금강송이 유달리 많다. 약수터 건너편 계곡의 바위에는 율곡이 새겼다는 ‘소금강(小金剛)’ 글씨가 보이지만 율곡의 글씨라는 증거는 없다.
‘겨우 머리를 숙이고 걸어서 석문에 들어서니 그 경색이 더욱 기이하여 황연히 딴 세계였다. 사방을 두루 돌아보니 모두 석산이 솟아 있고 푸른 잣나무와 키 작은 소나무가 그 틈바구니를 누비고 있었다’고 묘사된 식당암은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자 군사를 훈련시키면서 밥을 지어 먹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거대한 너럭바위다.
소금강에는 마의태자가 생활했다는 아미산성을 비롯해 고구려 축성 방식의 성인 금강산성이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이밖에도 수양대, 대궐터, 연병장, 망군대 등 마의태자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전해온다. 식당암에는 율곡이 소금강에서 공부할 때 이 바위에서 밥을 지어먹었다는 전설도 전해오지만 식당암이 생긴 모양에서 유래됐을 뿐 정확한 근거는 없다고 한다.
식당암에서 유유자적하던 율곡은 눈에 잡히는 암봉과 푸른 소에 촉운봉과 경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식당암이란 이름이 촌스러웠던지 비선암으로 고쳐 부르고, 산 전체를 청학산으로 명명했다. 하지만 비가 올 것 같은 궂은 날씨 탓에 더 이상의 산행을 포기하고 서둘러 하산길에 올랐다. 안타깝게도 구룡폭포의 장관과 거인상 귀면암 이월암 촛대석 등으로 불리는 만물상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이유다.
식당암에서 푸른 이끼로 뒤덮인 등산로를 한참 오르면 소금강 계곡이 떠나갈 듯한 천둥소리와 함께 소금강의 백미인 구룡폭포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아홉 개의 폭포와 소가 이어지는 구룡폭포 중 등산로에서 볼 수 있는 폭포는 가장 아래에 자리한 8폭과 9폭이다. 거대한 암반을 타고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수와 여름을 알리는 매미 소리로 속세에 젖은 눈과 귀를 씻고 발걸음을 재촉하면 만물상과 선녀탕이 기다린다.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는 선녀탕과 푸른 이끼로 단장한 너덜지대를 지나면 오색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가 요란한 백운대를 만난다. 진고개에서 노인봉을 올라 소금강으로 하산하거나 소금강에서 노인봉을 오르는 산행객들의 휴식처인 백운대의 눈부심은 글자 그대로 한 조각 흰 구름과 다름없다. 이어 노인봉까지는 삼폭포 광폭포 낙영폭포 등 절경이 계속되지만 소금강분소에 주차한 산행객들은 대부분 백운대나 구룡폭포에서 발걸음을 되돌린다.
하산길에 오른 율곡은 청학이 산다는 학소를 못 본 안타까움을 달래려는 듯 열 걸음에 아홉 번은 뒤를 돌아보았다고 고백한다. 청학은 날개가 여덟 개에 다리가 하나인 상상의 새다. 푸른 산과 푸른 계곡으로 이루어진 청학동 소금강 그 자체가 청학인데 율곡이 너무 욕심을 부린 것은 아닐까.
강릉=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청류로 눈 씻으면 청학동 선경이 보일까… 강릉 소금강으로 떠나는 초여름 계곡여행
입력 2014-07-10 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