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는 과거 한반도 관련 주요 문제에 새벽에도 입장을 내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것과는 달리 지난 3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독립기념일 휴일 등을 이유로 입장표명을 미루는 등 극도로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7일(현지시간)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에 대해 “(미국은) 지역 내 대화를 장려한다”는 짧은 원론적 입장만 내놓았다.
한·중 양국이 일본의 집단 자위권 등 재무장 추진에 우려를 표명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그는 “국무부와 국방부는 집단 자위권 행사에 환영 입장을 보였다. 우리 입장은 변함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미국이 정부 차원의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자칫 ‘한국·중국 대(對) 미국·일본’의 대립 구도가 형성될 수 있는 판단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 소식통은 “모든 정보와 언론 매체 보도를 샅샅이 훑어도 이번 정상회담과 관련해 미국 정부의 속내가 드러나는 언급을 보기 힘들 것”이라면서 “싱크탱크 연구원들은 혹시 한국과 중국이 너무 밀착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낼지 모르지만, 정부 당국자 입에서 결코 그런 발언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소식통은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이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에 한목소리로 비난한 데 대해 미국은 내심 불쾌해 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지만 미국은 중국 주도의 질서 재편에는 분명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시드니 사일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담당 보좌관은 한국이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우리는 인프라 투자와 개발에 관여하는 금융기관으로 세계은행(WB)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을 갖고 있으며 두 은행은 지배구조와 환경·사회적 세이프가드, 조달 측면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AIIB가 현 시점에서 이 같은 기준들을 이행할 수 있는지가 분명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백악관까지 나서 AIIB 가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한국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상황을 관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국은 지난주 시 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의 AIIB 가입을 공식 제의했고 이에 대해 한국은 주요사항을 협의하고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상태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
美, 韓·中 정상회담에 극도로 신중한 모습… “지역 내 대화 장려”
입력 2014-07-09 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