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애 4-H 회장님이십니까? 여기는 청송보호감호소입니다.” 그 전화를 받은 게 19세 때다. 재소자들에게 성공사례를 발표해 달라는 거였다.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성공사례를? 의아했다.
산골에 살면서 내가 한 일이라곤 열심히 새벽기도 드리기, 열심히 일하기, 열심히 책읽기였다. 그러다 우연히 농촌 살리기 계몽 운동인 4-H 연합회 회원이 됐고 다양한 영농교육을 받았다. 그 덕에 경운기, 콤바인, 트랙터를 능숙하게 작동하고 몰았다. 뭐든 열심히 했다. 그러자 4-H 연합회 경북 여회장에 뽑힌 것이다. 모범 청소년상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재소자들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열아홉 살 소녀 강사는 수백명 재소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강단에 섰다. 차갑고 서늘한 눈빛에 그만 울고 말았다. 재소자들은 측은한 눈빛으로 강사를 바라봤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담대함이 생겼는지, 소녀 강사는 또박또박 말했다.
“사람은 저마다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이란 굴레 안에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 운명을 뛰어넘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인생의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위기를 기회로 바꿔주십니다.” 그리고 담담히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재소자들이 보였다. 단상에서 내려오는 나를 향해 꾸벅 인사하는 이들도 있었다. 3일 뒤 한 번 더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날은 다른 분위기 속에서 재소자들을 만났다. 그들의 마음에 생기를 심어줬다. 노래를 가르쳤고 웃음을 선물했다. 나는 21세가 되던 해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교정위원 위촉을 받았다. 최연소 교정위원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이 모든 건 하나님의 큰 계획 안에 있었다.
당시 내가 섬기던 교회는 건물주의 요청으로 급하게 자리를 옮겨야 할 상황에 처했다. 나는 우리 교회를 위해 작은 씨앗이 되게 해 달라고 눈물을 뿌려가며 기도하고 있었다. 특별건축헌금을 드리자는 목사님의 제안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새벽마다 “최고 많이 드리게 해주세요”를 부르짖었다. 종일 흙먼지를 마시며 남의 집 품꾼으로 일하면서도 입술에선 “최고 많이 드릴 수 있다”란 믿음의 확신을 선포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환갑쯤 되어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찾아왔다. 신문을 읽다가 내가 쓴 글에 감동받아 직접 만나러 왔다는 것이다. 신문의 내용인즉, 재소자들 중에 가족이 없거나 있더라도 외면당하는 이들은 내복 한 벌 입을 수 있는 형편이 안 된다,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재소자들을 만나고 온 뒤 가슴 아픈 사연을 적어 두 달 전 신문사에 보냈는데, 그 글이 실린 거였다.
그분은 “재소자들을 돕고 싶다. 얼마면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분의 손을 꼭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성전 이전 문제로 힘듭니다. 저는 너무 가난해 드릴 게 없습니다. 주님께 최고 많이 바치고 싶은데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 교회를 먼저 도와주세요.”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분은 장로님이었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다시 사업체를 일군 뒤 시골에 교회를 짓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로님은 많은 돈다발을 건네며 “이 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니 갚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난생 처음 간절한 마음의 기도를 응답받아 우리 교회에서 최고로 많은 예물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다.
눈물의 깊이는 신앙의 깊이요, 믿음의 깊이다. 나는 눈물의 기도를 드리면서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기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확신이다. 하나님의 확신을 갖고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은 따라온다.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막 11:24)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역경의 열매] 박순애 (4) 21세에 ‘최연소 교정위원’이 되게 하신 뜻은?
입력 2014-07-10 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