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하응백] 함께 눈 뜨는 세상

입력 2014-07-09 02:21

‘심청전’에서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상인들의 제물이 되어 심청이가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가 실제로 있을까? 백령도에서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백령도와 황해도 장산곶 사이 바다의 한 지점이 인당수라고 한다. 옹진군에서는 이런 전설에 착안해 1999년 백령도 진촌리에 ‘심청각’이란 건물을 완공했다. 그 건물 전망대에서 비록 가상이지만 인당수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심청각은 많은 시각장애인들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

세월호 이후의 ‘눈감은 세상’

시인 몇 명과 백령도를 여행하다가 심청각에 들렀을 때 마침 시각장애인 10여명이 그곳을 관광하고 있었다. 가이드가 시각장애인들에게 전망대에서 인당수의 위치를 설명하면 시각장애인들은 실제로 보는 듯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특이한 장면을 목도한 기억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시각장애인들은 보이지도 않는 인당수를 보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심청전에서 황후가 된 심청은 맹인 잔치를 벌인다. 우여곡절 끝에 황궁에 도착한 심학규는 마침내 청이와 감격의 부녀 상봉을 한다. 하지만 이때까지 심학규는 눈을 뜨지 못했다. 청이가 옥수(玉水)로 아버지의 눈을 씻으면서 자신의 효성이 부족했는지를 한탄할 때, 비로소 심학규는 눈을 번쩍 뜬다. 보통 부녀 상봉과 심학규의 개안을 마지막으로 심청전은 끝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맹인 잔치에 모인 수만 명의 맹인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일시에 눈을 뜨는 진짜 마지막이 남아 있다.

심청전은 심학규 한 사람만이 아니라 잔치에 참여한 맹인 모두 함께 눈을 뜨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심청전이라는 고전소설 혹은 판소리 심청가는 장엄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심청각에서 보이지도 않는 인당수를 바라보았던 시각장애인들은 그 장엄한 해피엔딩에 동참하고 싶은 염원 혹은 희망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전에도 그랬지만 세월호 침몰 이후 우리는 더욱 눈감은 세상에 사는 것 같다. 선장과 선원들의 어이없는 행동과 청해진해운의 무리한 선적과 운항, 관련된 관청의 구조적 비리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침몰 이후 어느 방송사를 불문하고 계속되는 특집방송을 통해 숱한 오보를 내보냈다. 특히 각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출연, 구조와 인양에 대해 전문가적인 거짓을 계속적으로 이야기했다. 에어포켓이 어쩌고 하면서 실종자들이 살아 있을 거라고 확신까지 했다.

이제 태풍이 올라오고, 가을이 오면 수온은 낮아지고 겨울이 오면 바다는 거칠어진다. 무작정 요행과 우연에 기댈 게 아니라 수색과 인양에 관한 종합적인 플랜을 제시해야 하건만 그 많은 전문가는 침묵하고 당국은 여론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현장 마무리는 세월호 인양이 최후일진대 아직 누구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거액의 현상금을 내세워도 유병언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제 세월호 인양 논의할 때

그뿐만이 아니다. 국가 개조 운운하며 낙점한 국무총리 후보는 두 번이나 인사청문회에 서지도 못하고 낙마했다. 사표를 낸 총리의 유임은 명백한 궁여지책. 또한 전방에서는 한 병사의 총기 난동으로 5명의 동료 병사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사사건건 갈등 중이다. 그 갈등은 우리 모두의 비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당리당략을 위한 몰입일 뿐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는 실종되고 그들에게는 다가오는 재보선만이 안중에 있을 뿐이다. 그들은 정치인이 아니라 자신의 먹을거리만을 찾고 있는 직업적 선거인일 뿐이다.

누가 앞 못 보는 우리 국민들에게 ‘심청가’를 불러줄까? 함께 눈 뜨는 세상은 멀기만 하다.

하응백 (문학평론가·휴먼앤북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