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바르드나제 前 조지아 대통령 사망… 러 외무 시절 美와 협상 냉전 체제 종식 이끈 주역

입력 2014-07-08 03:57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과 함께 동서 냉전체제를 종식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한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전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6세.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의 보좌관은 “오랫동안 투병해온 그가 이날 정오 영면에 들었다”고 AFP통신에 밝혔다.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은 전 세계 냉전체제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을 허문 일등공신으로 기억된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시절인 1985년부터 90년까지 외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이끌었다. 아울러 개혁 성향의 고르바초프와 같이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과 각기 짝을 이뤄 미·소 양국 간 무기감축 조약, 냉전체제 해체 합의들을 이끌어냈다. 이어 89년 마침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봤다. 셰바르드나제에게는 가장 영광스러운 시기였다.

한국과의 인연도 남달랐다. 셰바르드나제는 외무장관이던 90년 9월 30일 유엔본부에서 최호중 외무장관과 ‘한·소 수교 공동성명서’에 서명했다.

소련 붕괴 후 정치력을 발판으로 93년 고국이자 독립한 신생국 조지아로 건너가 대통령으로 올라선 것까지 좋았다. 하지만 영광은 거기서 멈췄다. 취임 초 미국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으나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됐다. 막대한 국가 이권을 일부 특권세력에 나눠주면서 부패가 만연하고 범죄와 무질서는 통제불능 상태에 이르게 됐다. 집권 10년째인 2003년 11월 부정 총선이 치러졌다며 민심이 폭발했다. 수도 트빌리시 등지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셰바르드나제는 계엄을 선포하며 버티기에 나섰다. 그러나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결국 하야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장미혁명’으로 알려져 있다. 사저에 은둔한 그는 말년에 자서전을 쓰며 지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셰바르드나제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조지아, 러시아 등지에서 애도가 이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공보수석은 “푸틴 대통령이 조지아 국민들과 고인의 가족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셰바르드나제는 수완이 매우 좋고 유능한 사람이었다”며 “상하 지위를 가리지 않고 모두와 함께 일하려 했던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