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문화 무시하고 돈을 복음 전파 무기로… 한국 선교사들 일방적 태도에 쓴소리 쏟아져

입력 2014-07-08 02:28
필리핀 신학자인 로드리고 타노 박사가 지난 1일 필리핀 퀘존 필리핀기독교교회협의회 세미나실에서 한국 신학생들에게 선교사의 자세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지난 1일 필리핀 퀘존 필리핀기독교교회협의회(NCCP) 세미나실. 한국교회가 세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필리핀의 선교 관행을 되짚어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필리핀의 저명한 신학자이자 목회자인 로드리고 타노 박사는 한국인 선교사들에 대해 예수님의 ‘성육신’을 선교 현장에서 보여 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필리핀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 자신들의 뜻만 펼치려 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선교사는 그 나라와 온전히 하나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타노 박사는 ‘필리핀·한국 선교협력의 미래’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현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한국 선교사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필리핀에서는 면전에서 고함치는 일을 심한 모욕으로 받아들이는데, 한국인 선교사들은 회의할 때 자신의 뜻과 다르면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선교사들이 돈을 앞세우는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타노 박사는 “한국 선교사들이 돈이 많다고 현지인의 의견을 묵살하는 일이 종종 있다”며 “이러면 필리핀 사람들이 주눅 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한국 교인들이 보낸 돈을 너무 불투명하게 사용한다는 점도 문제”라며 “모두 하나님의 돈인데 선교사가 어떻게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타노 박사는 “법을 모르는 선교사들도 너무 많다”며 “세무당국이 외국에서 들어오는 돈을 모두 기록하고 있고 선교사도 세금을 당연히 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지식이 없는 데다 현지인의 조언조차 무시해 사고가 나곤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필리핀 법을 제대로 몰라서 현지인에게 노동 착취 수준으로 일을 시키는 선교사들도 일부 있다”고 비판했다.

5년째 필리핀에서 선교하고 있는 정해동 선교사도 지난달 30일 “선교사가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만 하는 일방주의적 선교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서로 존중하고 배우는 선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를 세우기보다 사람을 세우는 선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교사는 세상을 떠나든 필리핀을 떠나든 언젠가는 선교지를 떠날 사람”이라며 “사람을 세우지 못하면 그동안의 사역이 무위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은호 마닐라새생명교회 목사는 지난 2일 마닐라에서 가진 강연에서 “한국교회는 건물이 얼마나 큰가, 얼마나 많이 지었는가를 가지고 선교의 성공을 판단한다”며 “선교사가 떠나면 예배당이 공장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사람을 세워놓으면 1만 그리스도인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말씀을 기반으로 상호 관계가 확고해야 제대로 된 선교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 강연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교육훈련원의 11차 에큐메니컬 신학생 해외훈련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5일까지 열린 이번 해외훈련에는 장로회신학대 호남신학대 서울신학대 신학대학원생 9명이 참여했다.

퀘존(필리핀)=글·사진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