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광역단체장 중에는 자천타천으로 대권후보 반열에 오른 인사들이 많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남경필 경기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홍준표 경남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그들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거쳐 대권을 잡았던 것처럼 지방자치단체에서 행정 경험을 쌓고 능력을 인정받은 뒤 대권에 도전하려는 꿈을 꿀 법도 하다. 미국에서 주지사 출신들이 대통령이 되고 중국의 지도자들이 지방에서부터 실력을 쌓아 오는 것처럼 한국도 이제 지역의 거버너들이 대권을 놓고 경쟁하는 시대가 됐나 보다.
단기 성과보다 장기 비전을
사실 행정 경험이 없는 인사가 대통령이 됐을 때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 실패를 되풀이하는 것도 공직이나 행정 경험이 없어 공공성이나 객관성보다는 비선라인과 수첩, 정파성으로 인사를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사실 시정이나 도정은 대권으로 가는 사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시절 청계천 복원 사업 등을 통해 지지를 얻은 것이 대통령이 되는 발판이 됐다.
이 때문인지 최근 대권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박원순 시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대권 얘기만 나오면 시정에 몰두하겠다는 말로 피해가지만 시정에 몰두하는 것이 대권으로 가는 지름길이자 최고의 전략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광역단체장들은 아예 도정 성과를 발판으로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지방에 묻혀 있다 보면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기 때문에 어떻게든 관심을 끌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큰 꿈을 꾸기 위해서는 단순히 지방행정에서 성과를 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이들은 국가의 미래비전이나 정책 이슈를 제시하고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누리당 소속인 남경필 원희룡 지사가 야당에 연정을 제안한 것도 국민들에게 정파를 뛰어넘는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홍준표 지사는 진주의료원 폐쇄에 이은 지리산댐 건설로 이슈 파이팅을 하면서 부산 민심까지 끌어안으려 하고 있다.
광역단체장들이 큰 꿈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다만 재임기간에 눈에 띄는 도정 성과를 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단기적인 성과나 업적에 급급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1, 2년 내에 큰 업적을 만들기 어려울 뿐더러 10, 20년 후의 장기적 비전을 만들고 실천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박원순 시장은 아무 일도 안 한 시장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전임 시장들이 추진했던 대형 토건사업이 아니라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시민들의 삶 속에 스며드는 시정을 펴겠다는 반어적인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사다리보다는 시험대 될 것
대부분의 지자체는 열악한 지방재정에 허덕이고 있다. 조직과 재정권의 8할을 중앙정부가 갖고 있어 지자체는 중앙정부 출장소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지방자치가 아니라 2할 자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방분권이 제대로 안된 상태다.
단체장들은 해당 지역과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뿌리를 내려온 관료조직과 이익집단, 상대 정파를 상대로 설득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관료와 이익집단에 포위돼 정말로 아무 일도 안 한 시장이나 도지사가 될 우려가 있다. 이런 점에서 시·도지사는 대권으로 가는 사다리가 아니라 리더십과 행정 능력을 검증받는 혹독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신종수 사회2부장 jsshin@kmib.co.kr
[돋을새김-신종수] 시·도정이 대권으로 이어지려면
입력 2014-07-08 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