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 털어 ‘錢의 전쟁’… 우크라이나 비밀병기 재벌

입력 2014-07-08 02:46
우크라이나가 동부지역에 대한 진압작전을 펼쳐 반군이 장악하고 있던 주요 도시를 속속 되찾고 있지만 친(親)러시아 무장세력에 최대의 적은 정부군이 아니다. 그들 뒤에는 친러 무장세력의 조직원을 잡아오면 현상금을 지불하고, 오합지졸에 불과했던 정부군을 강군으로 만들기 위해 무기를 사주고 군사고문단까지 사재로 고용한 ‘재벌’이 있다.

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속절없이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내줬던 우크라이나의 숨겨진 비밀병기는 다름 아닌 ‘행동하는 재벌’이라며 이들의 활약상을 심층 보도했다. WSJ가 대표적 사례로 삼은 재벌은 유대계 출신으로 석유시장의 큰손 이고르 콜로모이스키.

러시아 접경지대 드니프로페트로브스크 주지사로 최근 임명된 그는 시민들이 친러 무장세력 조직원을 무기와 함께 잡아올 경우 1만 달러의 현상금을 줬다. 콜로모이스키 측근은 “현상금 제도로 잡아들인 친러 무장세력 숫자를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노획한 무기는 제값을 쳐서 구입했다. 정부군 무장을 위해 수백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 이렇게 해서 2000명의 전투부대와 2만명에 달하는 예비군을 편성했다. 올해 초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점했을 때 전투 가능 인원이 우크라이나 전체를 통틀어 6000명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라고 WSJ는 전했다. 콜로모이스키는 정부군과 경찰 월급으로만 한 달에 1000만 달러 넘게 사용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전투 역량을 높이기 위해 루마니아와 조지아로부터 군사고문단을 위촉했다. 특히 조지아 군사고문단을 받아들인 것은 오랜 러시아와의 분쟁에서 얻은 노하우를 얻기 위한 포석이다. 지난달 초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경지역 1200마일(약 1930㎞)에 전기 철책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콜로모이스키의 참모인 겐나디 코르반은 “러시아군이 죽고 싶으면 우리 지역으로 오면 된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일각에서는 그의 행위가 순수하지 않고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역시 재벌 출신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페트로 포로셴코를 의식했다는 것이다. 콜로모이스키는 “재벌의 봉기는 민주주의를 향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정계 진출설을 일축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로서도 현재는 그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올리가르히’로 불리는 우르라이나 재벌은 그동안 축출된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친러 무장세력의 재벌 국유화 위협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도네츠크주 분리주의 세력이 자체 선포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은 기업 국유화에 착수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5월 우크라이나 최대 재벌 리나트 아흐메토프는 반대 의사 표시로 자신의 사업장 근로자에게 경고성 부분파업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