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광림교회 원로목사 김선도(84) 감독은 수십 차례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후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1971년 광림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해 비전과 삶을 새롭게 하는 말씀, 영적인 치유, 조직적인 목회와 행정, 특수시설 선교를 통해 수많은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했다. 그리고 오늘날 광림교회를 세계 최대 감리교회로 부흥시켰다. 한국의 10대 설교가에 선정되는 등 그의 메시지는 우리 시대의 불안과 상처를 치유하고 소외를 극복케 하는 소통과 공감의 대명사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세계감리교협의회장, 한국 월드비전 이사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미국 애즈베리신대 국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은퇴하고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잠시의 멈춤도 없이 김 감독은 말씀을 나누고, 선교하고, 봉사하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해 왔다. 올 초에는 자서전 ‘5분의 기적’(넥서스CROSS)도 출간했다. 위르겐 몰트만, 리처드 포스터, 티모시 테넌트 등 세계적인 신학자들이 “영적인 감동을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추천했다. 최근엔 미국 세인트폴 신학대학원 전영호 교수를 중심으로 신학대 교수들이 ‘5분의 기적’을 영문판으로 번역하는 등 이 책은 다시 한번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지난 3일 광림교회에서 김 감독을 만났다. 세계 최대 감리교회를 담임한 원로 목회자의 방은 소박했다. 김 감독은 “내년 5월 영문판 출간에 맞춰 세인트폴 신학대학원 졸업식 축사자로 초청 받았다”고 소개했다. 책에 있는 무엇이 국내를 넘어 해외의 목회자와 성도들에게까지 영향을 준 것인지 궁금했다.
이 책에는 김 감독이 의학도의 길을 선택했으나 6·25전쟁 중 생사를 가르는 5분의 기적을 체험하고 의사가 아닌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되는 55년 사역 여정이 펼쳐져 있다. 해주의학전문학교 시절 북한군에 의해 강제 징집돼 북한 군의관으로 전장에 내몰린 그는 호시탐탐 국군에 투항할 기회를 엿보며 늘 기도한다. “주님, 제 운명을 주님께 맡기고 발걸음을 뗍니다.” 후퇴하는 북한군을 뒤로하고 탈출에 성공하지만 어느새 국군은 “탈영한 북한 군의관”이란 말을 던진다. 그리고 이내 “당신이 필요하오. 이쪽에 다친 군인이 많이 있으니 도와주시오”라고 부탁한다. 투항 현장에서 그는 북한군에서 국군으로 바뀐다. 불과 5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당시를 김 감독은 이렇게 회고했다.
“북한 군의관에서 국군 군의무관으로 변화된 시간은 단 5분이지요. 그 순간을 위해 얼마나 기도했는지 압니까. 나는 주저 없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 기적을 이뤄낸 힘의 원천은 기도였다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겁니다.” 김 감독은 54년 감신대에 입학하고 구도적인 물음과 목회자로서의 서원을 향한 구체적인 발걸음을 뗀다.
전장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았고, 하나님의 뜨거운 체험적 신앙을 경험한 그로선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늘 넘어야 할 산을 만나지만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기도하면서 헤쳐나간다. 김 감독의 이런 체험적 신앙은 평생을 긍정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책을 보면 김 감독의 혜안도 읽을 수 있다. 서울 쌍림동에서 강남구 신사동으로 교회를 옮겨 건축한 일, 민방위대원 교육 장소로 교회를 빌려준 일, 건강한 교회의 기능을 갖추기 위한 광림교회의 5개 기능 등은 노목회자의 신앙적 결단에서 비롯됐다. 김 감독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은 복음 선포, 사랑의 친교, 이웃에 대한 봉사를 근간으로 하는 그리스도의 사업을 전개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다”며 “그런 위대함에 이르는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면 못할 게 없다”고 조언했다.
하나님은 많은 동역자들을 붙여주셨다. 특히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해온 박관순 사모에 관한 이야기는 책에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지난해 6월 박 사모가 서울신대에서 실천신학 분야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날을 잊지 못한다고 김 감독은 전했다. 남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교회의 여러 실천적 현장에서 박 사모는 위로자요, 선포자로 같이 뛰어왔다.
이제는 일상의 여유를 누릴 때도 되지 않았을까. 노목회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교회와 이 시대 목회자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어쩌면 책을 쓴 이유도 거기에서 비롯됐는지 모른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세속화의 영향력에 강하게 끌려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회는 세상과 소통하기 이전에 먼저 세상과의 구별됨, 거룩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세속화 속으로 녹아드는 형태가 아니라 우리의 거룩함 속으로 세상이 걸어 들어오게 하는 블랙홀 같은 감동적인 교회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감동을 시킬 것인가? 그 겉살은 ‘경건함’과 ‘섬김’이요, 감춰진 속살은 ‘복음주의’입니다. 지난해 광림교회가 창립 60주년 기념으로 완공한 사회봉사관은 이 같은 인식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김 감독에게 은퇴는 ‘또 하나의 도전’에 불과했다. 그는 책에서 이런 고백을 드렸다. “인생을 1시간으로 비유한다면 내 인생에서 남은 시간은 5분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그 남은 5분의 시간을 생사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했던 그때, 그 5분의 감동으로 살아가고 싶다. 순간들 속에 놀라운 사건을 만들어내는 카이로스처럼 교회 사랑, 주님 사랑, 이 한길을 위해 눈물 흘려 기도하고, 땀 흘려 헌신하고, 피 흘려 희생하는 제사장이고 싶다.”(402쪽) 노목회자의 책은 위로와 권면을 통해 다시 한번 소망, 소명의 열정을 불태우게 한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6·25 전장서 운명 가른 5분의 기적 체험 하나님의 은혜 믿고 55년 사역 헤쳐왔다”
입력 2014-07-09 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