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이란 모임이 있다. 올해 초 시작한 모임인데 과학을 좋아하는 재미교포 한 분이 과학에 대해 이런저런 글을 올리다가 같이 책을 읽자고 제안하면서 출범했다. 몇 십명 회원이 모여도 성공이려니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시작한 지 며칠 만에 회원 수가 100명을 넘었고, 지금은 1300명 넘는 회원을 가진 큰 모임으로 급성장했다. 매달 진화론, 우주론, 심리학, 현대 물리학에 대한 한두 권의 과학 대중서를 읽고 토론을 하는데 회원들의 참여가 사뭇 진지하다.
인터넷과 SNS가 대중화되면서 과학을 찾는 성인들이 모이고 있다. 성인이 되어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 중에는 이공계 출신으로 학창시절 깊게 공부하지 못했던 주제를 더 알아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과학과 무관한 전공을 하고 지금도 과학과 관련 없는 일을 하는 사람도 많다.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필요를 느낀 뒤에 과학을 이해하고 공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이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듣는 라디오 방송 팟캐스트에는 ‘과학하고 앉아있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과학과 사람들’의 원종우씨가 진행하는 이 팟캐스트는 한 달에 두 번, 서로 성격이 조금 다른 프로그램으로 업로드된다. 한 번은 과학의 여러 이슈들을 잡아서 대담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다른 한 번은 공개 토크쇼로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은 최근 1년이 되었고, 다운로드 200만회를 기록했다. 이 팟캐스트의 열렬 애청자들은 정보를 얻는 것도 쏠쏠하지만 무엇보다 과학 프로그램이 재미있다는 평을 한다. 과학과 재미라는, 잡기 힘든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것이다. 지난 4월 ‘과학과 사람들’은 과학관의 천체투영관을 빌려 ‘사랑의 과학’에 대한 ‘19금 과학 버라이어티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물론 성인들을 위한 과학쇼였다.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는 매년 10권의 ‘올해의 과학 도서’를 선정하는데, 2013년 선정된 10권의 과학도서 각각에 대한 강연이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이루어졌다. 어린 학생부터 50대 주부에 이르기까지 과학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로 작은 강연장이 메워졌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과학을 주제로 한 알찬 대중 강연들을 제공하는데 이런 강연에는 과학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성인들이 몰린다. 과학 강연은 과학자와의 접촉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면서 과학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춘다.
과학문화는 문화로서의 과학을 의미한다. 과학 연구는 어렵고 힘든 경우가 많지만 문화로서의 과학은 사람들이 즐겁게 향유하는 형태를 갖는다. 이 점은 인문학이나 예술과 같은 다른 문화와 비슷하다. 그런데 인문학이나 예술과 조금 달리 문화로서의 과학은 즐거움과 ‘힐링’만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과학은 세상에 대해 조금 더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접근 방법을 제공해준다. 사람들은 우주 속에서 지구와 인간의 위치를 이해함으로써 겸손함을 체화하고 사리사욕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진화와 환경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통해 인간중심주의적인 생태계 파괴의 위험에 대해 인식할 수 있다. 심리학과 뇌과학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히기 쉬운 약한 존재인가를 알 수 있고 이런 깨달음은 나와 주변을 바꿀 수도 있다.
평생 과학관을 세 번 간다는 얘기가 있다. 어릴 때 한 번, 아버지가 됐을 때 아이랑 같이 한 번 더, 그리고 할아버지가 됐을 때 손주와 함께 또 한 번. 과학이 문화로서 성인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오기가 힘들다는 우스개다. 그동안 정부의 정책과 지원은 청소년을 위한 일회성 행사에 주로 집중되었다. 그렇지만 최근에 등장한 풀뿌리 과학문화는 우리 사회에서 과학을 문화로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나와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고 바꾸어보려는 성인들의 갈증이 임계점을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인을 위한 과학문화는 정부나 행정기관의 지원 없이도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여의도포럼-홍성욱] 풀뿌리 과학문화
입력 2014-07-08 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