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준동] 태풍 ‘너구리’

입력 2014-07-08 02:14
태풍은 1954년부터 이름을 갖기 시작했다. 호주의 예보관들이 같은 지역에서 여러 개의 태풍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혼동할 수 있다며 각각에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주로 자신들이 싫어하는 정치인들의 이름을 따서 태풍을 작명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은 혐오의 대상인 모양이다. 미 공군과 해군에서도 태풍에 이름을 붙였는데 당시 군 소속 예보관들은 자신의 부인이나 애인의 이름을 사용했다. 78년까지 태풍 이름이 여성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후 성차별 논란이 일면서 남자와 여자 이름을 번갈아 쓰기 시작했다.

한국이 속한 북서태평양 지역의 태풍 이름은 99년까지 괌에 있는 미국태풍합동경보센터에서 정했다. 그러다 아시아태풍위원회가 2000년부터 태풍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아시아 지역의 고유한 이름으로 작명해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을 비롯해 캄보디아 중국 북한 홍콩 일본 라오스 마카오 말레이시아 미크로네시아 필리핀 태국 미국 베트남 등 14개국이 10개씩을 제출해 모두 140개의 태풍 이름이 만들어졌다. 국가명 영문 알파벳 순서에 따라 각조 28개씩 5개조로 구성된 이 이름들은 태풍이 발생할 때마다 1조부터 5조까지 순차적으로 사용됐다. 보통 태풍이 연간 30여개 생성되는 것을 감안하면 전체 이름이 다 사용되려면 4∼5년이 소요되는 셈이다.

아시아 각국은 부드럽고 연약한 이미지의 작은 동물이나 식품, 곤충 등의 이름을 주로 제출했다. 이는 태풍으로 인해 생기는 피해가 적었으면 하는 소망이 담겨 있다.

한국은 나비 개미 제비 나리 너구리 장미 고니 수달 메기 노루 등 동식물로 이뤄진 10개를 제출했다. 북한도 기러기 소나무 도라지 버들 갈매기 봉선화 매미 민들레 메아리 날개 등 10개를 만들어 냈다.

그 가운데 ‘수달’(2003년 발생)과 ‘나비’(2005년)는 각각 ‘미리내’와 ‘독수리’로, ‘봉선화’(2002년)와 ‘매미’(2003년)는 각각 ‘노을’과 ‘무지개’로 교체됐다.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워낙 막대해 그 아픔을 지우기 위해 해당 이름을 퇴출하고 다른 이름으로 대체한 것이다.

8호 태풍 ‘너구리(NEOGURI)’가 북상하고 있다. 한국에서 제출한 네 번째 태풍 이름인 너구리는 매우 강한 중형 태풍으로 세를 키워 8일부터 우리나라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너구리가 귀여운 이름만큼 별다른 피해 없이 조용히 빠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