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국·아시아 ‘아픈 역사’ 예술로… 미국 LA 유력 갤러리 ‘백 아트’

입력 2014-07-08 02:42
제주도 노리갤러리에서 4일 열린 백 아트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 전시에 참여한 작가 등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백 아트 갤러리 수잔 백 대표, 김은중 노리갤러리 대표, 인도네시아 작가 헨리 도노, 코우 렁키앙, 말레이시아 작가 자키 안와르, 조각가 한용진 최태훈.
제주도 노리갤러리에 전시 중인 백 아트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 전시 작품. 한용진 작가의 돌조각.
제주도 노리갤러리에 전시 중인 백 아트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 전시 작품. 인도네시아 코우 렁키앙 작가의 인물화.
지난해 10월, 조각가 한용진(81)과 최태훈(49), 말레이시아 작가 자키 안와르(59), 인도네시아 작가 헨리 도노(55)와 코우 렁키앙(45) 등 아시아 작가 5명이 제주도에서 만났다. 각국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이들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유력 갤러리 백 아트(대표 수잔 백)가 2주간 한국에서 진행한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제주 곳곳을 둘러본 후 경기도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도 방문했다.

식민 지배라는 아픈 역사를 가진 국가 출신 작가들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각자 작업한 작품을 지난 4일 오후 4시 제주시 한림읍 노리갤러리에서 공개했다. 26일까지 열리는 전시의 타이틀은 ‘핸즈 어크로스 더 워터(HANDS ACROSS THE WATER)’. 바다에 함께 손을 담가 공통의 주제의식으로 작업했다는 의미다.

스튜디오에 일정기간 함께 지내면서 공동 전시를 여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많다. 하지만 이처럼 국적이 다른 작가들이 1년 전에 잠시 모여 여행을 하고 대화하고 사색하면서 만든 결과물을 선보이는 경우는 국내외적으로도 드물다. 백 아트의 이색적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싱가포르 등 동남아 작가 중심으로 지난해 멕시코에서 처음 진행한 후 올해 제주도에서 두 번째 마련됐다.

백 아트는 로스앤젤레스 한인촌에 1989년 개관한 앤드루샤이어를 갤러리스트 수잔 백(46)이 2002년 인수한 상업화랑이다. LA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메이저 갤러리 중 하나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한 김창열 화백 등의 전시를 열어 주목받았다.

백 대표는 “명품을 파는 백화점식 갤러리에서 벗어나 각국의 다양한 작가들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고 협업하면서 의미 있는 작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지원 프로그램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작가들은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뿐만 아니라 역사적·지정학적 상징성과 의미를 작품에 담았다. 한용진은 제주의 현무암으로 조각한 작품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표현하고, 최태훈은 플라즈마기법(압축공기를 이용해 철판에 미세한 구멍을 만드는 절단기술)으로 제작한 작품 ‘세월호’를 전시장 천장에 매달아 눈길을 끌었다.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자키 안와르는 잠수복을 입은 제주 해녀들이 바닷게를 잡는 작품을 내놓았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물길을 하는 해녀들을 보면서 노동의 신성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2012년 광주비엔날레에 참가한 적이 있는 헨리 도노는 인도네시아 정치·사회를 풍자한 그림을, 인물 그림으로 유명한 코우 렁키앙은 한국인들을 모델로 한 초상화를 출품했다.

작가들은 제주와 한국, 아시아가 지닌 아픈 역사를 각자의 방식 또는 협업으로 다양하게 풀어냈다. 전시를 기획한 최태만 국민대 교수는 “나라와 장르는 다르지만 경험을 공유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아시아 예술의 연대감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제주에 이어 9월 LA 백 아트 갤러리에서도 열린다(064-772-1600).

제주=글·사진 이광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