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화제] “여성 할례, 영국서도 17만명 피해”

입력 2014-07-07 02:50

“제 삶이 바뀌게 된 날은 제가 매우 어렸을 적, 3살 때였습니다. 마치 가축을 도살한 것처럼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어요. 잘려나간 내 살이 바위 위에서 햇빛을 받으며 말라가고 있었지요.”

영화 ‘사막의 꽃’(Desert Flower, 2010)의 실제 주인공이자 소말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모델 와리스 디리가 공론화해 국제적 이슈로 떠오른 여성 할례(女性割禮·여성성기절제술) 피해자가 지난 30년간 영국에서만 17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BBC에 따르면 5일(현지시간) 영국 하원은 1985년 이후 영국에서 17만명의 여성이 할례를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현재도 13세 미만 소녀 6만5000명이 위험에 노출됐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하원은 “여성 할례는 극단적인 어린이 학대”라면서 “정부와 경찰, 보건·교육 당국이 이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여성 할례는 여성의 성년의식 중 하나로 성기의 음핵 등 일부를 제거하는 시술을 말한다. 15세 이전의 어린 소녀를 대상으로 마취도 없이 비위생적인 칼과 바늘로 시술되는 게 대부분이다. 해당 여성들은 끔찍한 고통과 함께 감염, 불임, 성관계와 출산 시 고통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린다.

남성 할례와는 달리 여성 할례는 건강상의 이득과는 상관없이 여성의 순결을 증명한다는 이유로 행해지는 경우가 절대 다수다. 때문에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순결한 신부’라는 물건으로 취급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2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세계적으로 여성 할례의 악습을 전면 금지하는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프리카와 일부 중동 국가에서는 여성 할례가 종교 또는 부족의 관습이라는 미명 아래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다. 유엔 산하 국제아동기금(UNICEF)이 지난 2월 ‘여성할례 철폐의 날’을 맞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1억2500만명 이상의 여성이 할례를 받은 것으로 추산된다. 여성 할례가 가장 많이 시술되는 나라는 소말리아로 전체 여성의 98%가 할례를 받았으며 기니 이집트 말리 수단 등 아프리카 국가들이 뒤를 잇고 있다.

영국은 할례 관습이 여성의 인권을 짓밟는 행위로 보고 1985년 법으로 금지했다. 할례 강요나 시술행위가 적발되면 최고 14년의 징역형을 받지만 이와 관련해 그동안 영국에서 기소된 사건은 올해 단 한 차례뿐이다. 여성 할례 관습을 지키는 아프리카 출신 이주민이 증가하면서 불법 시술이 성행 중이며, 어린 딸을 국외로 보내 할례 수술을 받게 하는 식으로 단속망을 피하기도 한다.

하원은 “의료진이 할례를 받을 위험이 큰 소녀들을 점검하고 할례 시술을 단호히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여성 할례를 한 세대 안에 없앤다는 목표를 세우고 올해 영국에서 첫 번째 관련국 정상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