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변칙 개봉에… “자본의 갑질” 성난 영화계

입력 2014-07-07 02:31
'평화는 깨졌다'를 홍보 문구로 내세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포스터. 개봉일이 6일 앞당겨지면서 영화계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평화는 깨졌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이하 혹성탈출) 포스터에 있는 홍보문구다. 인간의 탐욕에 반기를 든 성난 침팬지들의 선전포고를 함축한 내용이다. 그런데 혹성탈출 때문에 영화계 평화가 깨졌다. 혹성탈출의 개봉일이 돌연 6일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엄청난 규모의 상영관을 잡을 것이 확실한 대작의 개봉일이 변경되면서 혹성탈출을 피한다고 한 주 앞서 개봉 계획을 세웠던 영화들은 폭격을 맞은 상황이 됐다. 철저한 시장 논리 속에 경쟁작들은 스크린 축소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영화계 강력반발…“충격을 넘어 분노”=혹성탈출은 당초 16일 개봉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수입사 이십세기폭스코리아측은 개봉일을 10일로 앞당겼다고 지난 4일 밝혔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측은 “컴퓨터그래픽 작업이 많은 영화라 심의 일정 등을 고려해 16일로 잡았던 것인데 심의가 생각보다 이른 지난 3일에 나와 앞당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미 동시개봉을 맞추려는 의도도 있다.

영화계는 반발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는 “상도의를 무시한 변칙적 개봉에 충격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며 조기 개봉 철회를 촉구했다. 제협은 “한국의 영화제작사는 물론 중소 영화수입·배급사들이 깊은 혼란에 빠졌다”고 말했다.

혹성탈출과 같은 날 개봉하게 된 외화 ‘사보타지’의 수입사인 메인타이틀픽쳐스의 이창언 대표는 “영화시장의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더불어 관객들로부터 폭넓은 영화 선택의 기회를 앗아가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거대 자본의 논리로 중소 영화사들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이러한 변칙 개봉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성 주지훈 이광수가 주연을 맡은 한국영화 ‘좋은 친구들’ 역시 10일 개봉 예정이라 혹성탈출의 직격탄을 맞게 됐다. 지난주 개봉한 한국영화 ‘신의 한수’와 ‘소녀괴담’ 역시 혹성탈출과 2주의 개봉일 거리를 두겠다는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됐다.

◇대작 개봉 변경에 체급 낮은 영화 직격탄=영화계는 왜 한목소리로 반발하고 있을까? 영화는 제작에서 상영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과 노력, 비용을 들어가는 작업이다. 적지 않은 마케팅 비용(보통 총제작비의 20%)을 들여 개봉일정을 잡는다.

영화계는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원만한 배급질서를 마련하기 위한 관행을 이어오고 있다. 배급사 및 제작사들은 개봉 수개월 또는 1년 전부터 배급 영화에 대한 라인업 정보를 공유한다. 각 회사별 개봉 예정 영화의 라인업을 바탕으로 배급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른 영화의 후반작업 및 광고비의 집행 등 만만치 않은 경비를 조달하면서 배급준비를 한다.

이때 만약 누군가 개봉계획을 변칙적으로 변경하게 되면 경쟁작들은 심각한 혼란과 엄청난 경제적인 손실을 입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급작스럽게 개봉일을 변경한 것이다. 제협이 “상도의에 맞지 않는 일” “내가 먼저 살고 남을 죽이려 하는 이기적인 행위”라고 반발하는 것은 그런 위기감의 표출이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