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학군 속의 8학군’으로 불리는 서울 강남의 대치동 학원가.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도 차들이 몰려들어 길이 북적인다. 학원 수업이 끝나고 건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을 하나 둘 태우고 사라지는 자가용들과 단체 관광이라도 가듯 줄지어선 노란 학원 버스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몇 년 째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지만, 대한민국 학원가 풍경에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허리띠는 졸라매도 교육비는 줄이지 않았다는 한국에서 학원상권은 정말 불황이 없었을까. 국민일보는 신한카드 빅데이터센터와 함께 수도권 대표 학원가 10곳(서울 대치동 한티역·대치역·대치우성사거리·은마사거리, 목동 5·6단지와 오목교역, 신·구반포, 중계동 은행사거리, 경기 안양평촌 학원사거리)을 선정, 상권의 특성을 분석해 봤다. 분석은 각 상권별로 가맹점 한 곳을 기준점으로 삼아 반경 300m 안에서 이뤄진 신용·체크카드 결제 내용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표적인 학원가에는 불황이 (상대적으로)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학원 상권 규모를 기준으로 본 학원가 순위는 ‘대치동 다음 목동’ 이라는 사회적 통념과는 차이가 있었다.
안양평촌(경기), 대치 은마(강남), 중계(강북)… 3大 학원가 ‘인증’
10개 상권의 올해 1분기(1∼3월) 월평균 매출을 분석한 결과 학원 매출액이 가장 높은 곳은 안양평촌 학원가(25억원)였다. 학원 매출은 학원 업종으로 분류된 가맹점에서 결제된 카드매출을 의미한다. 이어 대치 은마사거리(23억원), 중계 은행사거리(21억원) 등 순이었다. 다만 대치동 내에 4곳으로 분산된 학원가의 매출을 모두 합하면 대치동 학원가의 총 학원 매출액은 46억원에 달했다.
안양평촌은 상권 전체 매출에서 학원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67.9%에 달했다. 이어 중계(58.0%), 대치 은마(56.2%) 등 순이었다. 이들 상권 내에서 이뤄진 카드 결제액 중 학원비가 절반을 넘은 셈이다.
학원 매출액 규모로나 비중으로나 안양평촌, 대치 은마, 중계 등 세 곳이 각각 수도권 신도시와 서울 강남, 강북 지역을 대표하는 학원가로 확인된 셈이다.
이들 대표 학원가 상권은 불황의 충격도 적게 받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2013년 신한카드의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8%로 한 자릿수에 그쳤다. 그러나 중계의 매출 성장률은 연평균 18.5%에 달했다. 학원매출은 매년 평균 20.5%씩 커졌다. 대치 은마와 안양평촌 학원가 등도 학원 매출은 물론 상권 전체 매출이 최근 5년간 매년 평균 두 자릿수 이상 늘어났다.
한편 비(非)강남 지역의 대표적 학원가로 꼽히는 목동 5·6단지 학원가는 카드 매출에서 학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14.9%에 불과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 상권 내에 이대목동병원이 있어 종합병원 매출이 전체 상권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목동 오목교와 신반포 학원가는 대형 백화점과 지하철역 등이 위치한 상권인 탓에 학원가의 특징을 살피기는 어려웠다.
중·고생 엄마(40대 여성) 소비 주도, 패스트푸드점·서점·문구점 등 매출 성장세
학원가 매출을 담당한 주 소비층은 다름 아닌 40대 여성이었다. 안양평촌 학원가에서 결제된 카드매출의 69.5%가 40대에서 이뤄졌다. 중계도 매출의 69.4%, 대치 은마는 58.8%가 40대에 몰려 있었다. 세 곳에서 모두 여성 결제 비중은 60%에 육박했다. 일반 상권에서 카드 매출 중 30·40·50대 비중이 26.6%, 32.2%, 20.9% 정도로 고루 분포한 것과 대비된다. 학원상권에서 중·고생 자녀를 둔 엄마 소비가 높다는 가설이 확인된 것이다.
학원가에서는 10대 매출 비중도 안양평촌(1.0%), 대치은마(1.0%), 중계(0.7%) 등으로 눈에 띄게 높았다. 상권을 구분하지 않은 전체 신한카드 매출에서 10대 비중은 0.4%에 불과하다. 신한카드 심병필 차장은 6일 “체크카드는 미성년자도 만들 수 있다”면서 “부모님이 만들어준 체크카드로 문구나 패스트푸드점, 교통비 등을 직접 결제하는 중·고생과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세 등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간대로는 주중 월요일 오후 5∼8시에 사용한 카드 매출이 가장 많았다. 오후 5시 이후, 방과후 시간대에 학원에서 이뤄지는 학원비 비중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학원가에서는 학원업 외에는 할인점·슈퍼마켓이나 한식 등 식당의 매출 비중이 고루 높게 나왔다. 학원이 가장 많은 안양평촌과 중계 학원가 상권에서는 패스트푸드점과 서점, 문구점 등의 매출 성장세가 눈에 띄었다. 안양평촌 상권에서 패스트푸드점 매출은 2009년 대비 2013년에 336.8%나 증가했을 정도다. 다른 지역에서는 매우 미미한 문구 매출도 173.5% 늘었다. 중계에서도 패스트푸드점(138.2%), 서점(133.8%) 등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
제과점(대치역, 목동 5·6단지), 이·미용(대치 은마, 대치 한티, 목동 오목교), 스포츠센터(안양평촌, 대치역) 등도 학원 상권에서 성장세가 돋보였다.
전체 시장에서 서점 가맹점은 줄고 있지만 안양평촌과 중계, 대치역 상권에서는 매출액 상위 10위 업종에 서점이 들어간 점도 주목을 받았다.
반면 학원가 주변에서는 늦은 밤 끝나는 아이를 기다리는 학부모들 덕에 커피숍이나 스크린골프장, 노래방 등이 잘될 것이라는 ‘통설’은 뚜렷한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다. 매출 비중 상위 10위 안에 커피숍이나 실내골프장 등의 업종이 들어간 지역은 구반포(10위 커피전문점 1.5%)가 유일했다. 오히려 안양평촌과 대치 은마 상권에서 노래방, 실내골프장은 최근 5년간 매출이 줄어든 업종 5위 안에 들었다.
조민영 박은애 기자 mymin@kmib.co.kr
[빅데이터로 본 학원가 상권] 안양평촌 학원 가장 많이 벌어… 불황에도 끄떡없어
입력 2014-07-07 03:13 수정 2014-07-07 1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