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7월 16일 브라질월드컵의 마지막 경기 브라질-우루과이전. 강팀을 연파한 브라질의 우승을 의심한 이는 거의 없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조차 줄리메컵을 미리 브라질축구협회에 넘겼을 정도였다. 기대는 브라질이 1대 2로 역전패하면서 비극이 됐다. 관중 4명이 심장마비와 자살로 숨을 거뒀고 폭동이 발생했다. 브라질축구협회는 선수 유니폼을 불태웠다. 또 대표팀의 하얀색 옷을 현재의 노란색 상의와 푸른색 하의로 바꿨다.
브라질 최고 골키퍼로 추앙받던 모아시르 바르보자가 속죄양이 됐다. 바르보자는 우루과이 골잡이 알시데스 기지아가 찬 공을 뒤로 점프하며 쳐 냈지만 공은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바르보자는 평생 용서받지 못했다. 미국월드컵 예선전이 열리던 93년 브라질 대표팀 격려차 선수촌을 방문했지만 당국이 입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국가대표 골키퍼 코치 자리에도 지원했지만 거절당했다. 쥐꼬리만한 연금 외에 수입이 없던 그는 형수 집에 얹혀살다 2000년 79세의 일기를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바르보자는 생전 “브라질 최고 형벌은 30년 징역이다. 나는 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에 대해 43년간 형벌을 받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골키퍼 수난의 역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 선정 20명의 20세기 골키퍼 중 한 명인 아르헨티나의 아마데오 카리소. 그는 거침없는 공격 본능으로 골키퍼도 창병(槍兵)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린 선구자였다. 하지만 58년 스웨덴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체코슬로바키아에 1대 6으로 대패하자 대중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카리소는 집 밖에 나올 수 없었다. 얼마나 괴로웠는지 카리소는 “나는 항상 내가 막았던 골들보다 내가 실점한 골들을 더 기억한다”고 토로했다.
비슷한 일은 더 있다. 30경기 무패 행진을 달리던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9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콜롬비아에 0대 5로 지자 골키퍼 세르히오 고이코체아가 뭇매를 맞았다. 페널티킥 막기 달인으로 칭송받던 그는 대표팀에서 쫓겨났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자살을 권유하기도 했다.
골키퍼는 1871년 탄생했다. 1863년 영국 런던 주점에서 근대축구가 태동한 이후 8년 만이었다. 이후 골키퍼는 고독한 싸움의 대명사였다. 골의 기쁨을 좇는 축구에서 골을 막아야 하는 그들의 숙명은 애초부터 비극적이었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그러나 골키퍼의 활약이 눈부시다. 비극적 운명을 이겨낸 수문장들의 선방 쇼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기대된다.
김상기 차장 kitting@kmib.co.kr
[한마당-김상기] 골키퍼의 수난
입력 2014-07-07 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