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3일 양국 정상의 공동성명은 그리 특별한 게 없었다. 공동기자회견에서도 양국 정상은 그 흔한 내외신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도 내주지 않을 만큼 말을 아꼈다.
중국 주석이 취임 후 평양보다 서울에 먼저 왔고, 한국만을 위한 해외 단독 방문에 국무위원과 재계 인사들이 대거 동행했다는 점은 이례적이었다. 한국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가 예전과 사뭇 달라진 것은 분명했다.
양국 정상이 아꼈던 말은 4일 쏟아져 나왔다. 비공식 오찬에서 양국 정상은 일본의 고노 담화 검증보고서 채택과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헌법해석 변경 등과 관련해 우려 섞인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특히 시 주석은 이날 서울대 강연에서 일본 문제와 관련해 한·중 공조를 강조했다.
중국이 마치 한국을 향해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펴는 듯하다. 하지만 우린 마냥 좋아할 수 없다. 한·중 밀월관계가 북핵 문제 해결과 제1의 교역 상대로서 경제협력 확대를 위해 매우 중요하고 큰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기존의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 체제를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장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4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중이 과거의 역사를 괜히 꺼내 국제문제화하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주요 언론들도 “중국이 한국을 포섭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정부의 공식 논평은 없었으나 뉴욕타임스는 3일 “시 주석의 방한이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고 중국 중심의 역내 새 안보체제를 구축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치 한국이 양손에 중국과 미국이라는 떡을 쥔 형국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한국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높아졌음을 확인해주는 것 같다. 하지만 시 주석이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에 대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인지 묻고 있음을 감안하면 양손의 떡은 고뇌의 독배가 될 수도 있다.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내년을 항일전쟁 승리 및 식민지 해방 70주년으로 명명하고 함께 기념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에서도 의미 있는 행사를 준비하려 하고 있다”고 피해 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중국이 한국에 갈 길을 묻기 이전에 우리 스스로 남북 및 한·일 관계를 잘 관리해 왔더라면 그런 옹색한 국면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중국을 따르자니 미·일이 걸리고, 미·일을 중시하자니 일본의 역주행이 미덥지 못하다. 북한을 의식해 중국을 되돌아보지만 중국이 북핵 문제 해법을 바로 가져다줄 것이라고도 낙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한·미동맹 체제에만 맡겨둘 수 없는 것도 같고…. 답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주변국들은 자꾸만 대한민국에 길을 묻고 있다.
기원전 7세기 경 유다 왕국의 지배계층들은 북쪽 앗시리아의 침략을 두려워하면서 남쪽 이집트와 동맹을 맺어 난국을 타개하려고 했다. 이에 예언자 이사야는 스스로 서지 못하는 나라에서 동맹은 되레 해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바로의 보호가 너희들에게 수치가 되고 이집트의 그늘이 너희에게 치욕이 될 것이다.”(사 30:3)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중심만 바로 선다면 한반도를 둘러싸고 합종연횡의 기운이 넘치는 가운데서도 꿋꿋이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심이란 지배·피지배의 역사, 동족상쟁의 비극이 벌어진 땅에서 평화와 공존, 화해와 협력을 국가의 최고 가치로 떠받들고 모든 정책이 그 틀 안에서 작동되도록 하면서 미래를 모색하는 행보, 바로 그것이다.
이는 한·미 관계를 등한시하자는 게 아니고, 심화단계에 이른 한·중 관계만 앞세우자는 것도 아니다. 이 둘이야말로 공존이 필요하다. 더불어 남북 및 한·일 관계를 포함해 그 가치에 입각해 그랜드비전을 세워가야 한다.
힘의 외교가 여전히 살아 있는 지금 가치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겠으나 그래서 가치 구현에 더욱 치밀하게 대응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한국이 역내의 균형추가 되는 것은 결코 한여름 밤의 꿈이 아니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조용래 칼럼] 중국이 대한민국에 길을 묻다
입력 2014-07-07 0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