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우선덕] 쓸모 없는 것의 쓸모

입력 2014-07-07 02:17

어쩌다 약속이 그곳으로 잡히면 시내에 나가 그곳의 회전문을 연다. 대형서점의 출입문 안쪽이다. 일찍 도착해도 약속장소에서 한 발짝을 떼어 진열된 책을 보러 가지는 않는다. 인기 있는 책 진열대는 두세 겹씩도 사람들이 둘러쌌는데 그 틈을 비집을 엄두를 못 내는 게 옹색한 첫째 이유다.

동료 한 분은 주기적으로 신간을 찾아보고 거의 의무적인 구입도 한다. 남의 책을 사주기도 해야 남도 자기 책을 그래줄 것 아니냐는 희망사항을 들었다. 다른 동료분은 자기 책이 한 권이라도 저 속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이 벅차고 행복하다고도 한다. 그럴 수 있는 너그러움이 부럽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구석에 짓눌려 존재감 자체가 없는 내 책을 떠올리면 그저 참담하다. 책의 해일에서 숨 한번 쉬지 못한 비참한 운명을 확인하고 싶지 않다. 대형서점에 안 가면 평소에는 눈곱만큼도 생각지 않으니 그럭저럭 오래 도피생활을 해온 셈이다.

책은 인간을 바꾼다는 말이 있고 우리 소설가협회에도 소설은 인간을 바꾼다는 구호가 있다. 정말일까. 어쩌다 어떤 책이 어떤 인간에게 맞아 들어가 기적이 생기기도 하긴 할 게다. 몇 십년 넘게 잘 읽히지 못할 소설을 써오면서 깨달은 이치는 조금 다르다. 소설은 남이 아니라 소설을 쓰는 자신의 됨됨이를 조금이라도 좋게 하는 길이었다. 허구를 통해 삶의 비의와 진실을 밝혀내는 게 일이다보니 이야기의 전개발전과 등장인물을 통해 결국 자신을 닦기에 다름 아니었다고.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발언일 뿐이다.

불황에는 책부터 팔리지 않는다는 소리를 소설가가 되고 40년 가까이 들었다. 책을 본다 하여 책이 밥을 주나 돈을 주나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고달프고 바쁜 삶에 정말 쓸모없는 게 책이며 소설이다. 정신의 음식이니, 정신의 허기니 하지만 육신이 배고플 때는 그 모두 흰소리에 불과하다. 책시장이 지금 같은 불황은 없었다는 소리도 내내 들었다. 40년 가까이 책시장이 불황 아닌 적이 없었다는 얘기다.

약속장소인 서점에서 저 안쪽 도서진열대를 에워싸고 있는 독서인들의 정경을 본다. 책이며 문학이 책을 읽는 저이들 중 한 사람쯤을 좋게 바꾸는 데 기여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글을 쓰고 있는 한 사람도. 아직 이렇듯 쓰고 읽는 인구가 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쓸모없는 것의 쓸모, 그 주소가 바로 거기에 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려니.

우선덕(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