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개봉한 정우성 주연의 ‘신의 한수’는 꽤 짜임새 있는 영화다. 내기바둑을 소재로 형을 죽인 무리에게 복수하려는 동생의 이야기다. 변방의 고수들을 하나 둘 끌어 모아 ‘작전’을 펼친다는 점에서 잘 만든 오락영화 ‘오션스 일레븐’이나 ‘도둑들’이 연상된다. 정우성을 중심으로 이범수 안성기 안길강 이시영 등이 제 몫의 연기를 했고, 각각의 캐릭터도 개성 있다.
패착, 착수, 포석, 행마, 단수, 회돌이치기, 곤마, 사활, 계가 등의 바둑용어로 챕터를 나눠 구성한 것도 흥미롭다. 프로 기사들이 나서서 바둑에 대한 고증도 철저히 했다. 모처럼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오락영화인가 싶었는데 아쉽게도 박수만을 보낼 수 없다. 작품의 잔혹성 때문이다.
정통 누아르도 아닌 범죄 액션으로 분류되는 이 영화는 도입부부터 잔인하다. 음모가 판치는 내기바둑판, 진 사람에게 바닥에 흩어진 바둑돌을 억지로 집어 삼키게 한다. 그것도 모자라 바둑돌을 잔뜩 넣은 양말로 눈을 때린다. 동공이 파열된다. 심지어 혀를 자르는 장면도 나온다. 피가 솟구친다. 질끈 눈을 감아보지만 이미 머리로는 상상하고 있는 상황. 여기에 칼로 살을 베는 소리까지 귀를 자극한다. 소름이 돋는다.
사나이의 세계 혹은 복수를 다룬 영화에는 꼭 흥건한 피가 고여야 하는 걸까. 실제로 ‘신의 한수’ 시사회 후 감독과 만난 자리에서 기자들이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은 “왜 이렇게 잔인한가요”였다.
한국영화가 노골적이고 적나라해지고 있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부쩍 심해졌다. 식칼이 난무하고, 등장인물은 피로 흥건하게 물든다. 신체를 훼손하는 장면까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한국영화를 보자. ‘끝까지 간다’ ‘우는 남자’ ‘하이힐’ ‘황제를 위하여’ ‘신의 한수’까지 온통 범죄, 누아르 일색이다. 영화제작사는 좀더 센 걸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진 듯하다. 폭력이나 선정적인 장면이 캐릭터나 전개상 불가피하다면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한국영화는 ‘그래, 이 즈음에서 피 한번 뿌려줘야지’ 혹은 ‘이 장면에선 한번 벗어줘야지’하는 경쟁에 돌입했다.
그런데 관객들이 정말 이런 영화를 원할까? 아니다. 스코어가 이를 증명한다. 한국형 누아르를 표방한 ‘우는 남자’ ‘하이힐’ ‘황제를 위하여’는 참패했다. 관객들은 지쳤다.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영화, 시작하는 연인과 함께할 달달한 영화를 찾는 이들이 꽤 많다.
그런데도 왜 이런 영화 위주로 만들어질까. 잔인함으로 경쟁하는 한국영화의 문제는 참신한 기획보다는 남성 스타에 의존하는 기획력 부재에서 찾아야 한다.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다 보니 자연스레 장르는 거친 액션이 주가 되는 누아르나 범죄영화가 된다.
지나치게 잔혹한 장면은 오히려 몰입을 방해한다. 인간 본성 중 비겁함과 야비함, 잔인함을 노골적으로 강조한 영화. 불편하다.
올 상반기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12% 포인트 떨어졌다. 스타들이 나온 제작비가 많이 든 영화, 이미 흥행에 성공한 비슷한 장르의 작품을 따라한, 그래서 완성도는 떨어진 영화에 관객이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부실해진 대신 좀더 자극적이 됐을 뿐이다.
지난해 한국영화는 누적관객 1억명을 넘기며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올해는 1억명이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관객들이 정말 더 강한 자극을 원한다고? 아니다. 영화제작사, 당신들의 오해일 뿐이다. 한국영화 잔인함의 기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승주 문화부 차장 sjhan@kmib.co.kr
[내일을 열며-한승주] 관객이 자극적인 걸 원한다고?
입력 2014-07-05 02:31 수정 2014-07-05 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