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전정희] ‘세월호’ 섬 할머니 상륙기

입력 2014-07-05 02:34
지난 1일 오전 8시30분.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가기 위해 관사도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렸다. 관사도는 팽목항에서 20㎞ 떨어져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도를 품고 있었다. 낙도선교회 단기선교팀을 따라 들어오는 길이었다.

맹골수도에선 실종자 11명을 찾기 위한 구조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관사도 남쪽 서거차도가 베이스캠프였다. 손님은 현빈이 할머니와 기자뿐. 70대 중반 할머니는 틀니를 하러 뭍 임회면사무소가 있는 십일시라는 곳의 치과에 간다고 했다. 할머니는 “배 시간이 딱딱 맞아 외지에서 자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라면서 걱정했다.

목적지는 맹골수도 섬들의 중심 섬인 조도 창유항이었다. 그곳에서 팽목항으로 가는 배편이 연계된다. 그런데 여객선은 물때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를 상조도 율목선착장에 내려놓았다. 선사 측은 불친절하게도 어떤 안내도 하지 않았다. 매번 이런 식이라고 할머니가 말했다. 섬 주민에게 선사는 절대 갑(甲)이다. 어부에겐 해경이 갑이다. 할머니는 “이를 어쩐디야”하면서 조바심을 냈다. 창유항에서 팽목항 가는 배를 놓치면 별 수 없이 1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1박은 생돈 드는 일이다. 꽤나 속상해 했다. 우리는 율목선착장에 내려 상·하조도 유일의 택시를 불렀다. 두 섬은 연륙교로 연결되어 있다. 택시비 1만5000원. 조손가정의 할머니에게 큰돈이었다.

마음이 급했다. 어떻게든 창유항에서 배를 타야 했다. 택시 기사는 속도를 높여 빠른 샛길로 내달렸다.

택시가 항구에 도착했을 때 배는 아직 떠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기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내리자마자 배로 달려갔다. 한데 젊은 직원이 가로막았다. 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안 되야. 오늘은 꼭 타야 혀. 그래야 집에 돌아올 수 있어”라며 통사정했다. 할머니는 며칠 전에도 똑 같은 상황으로 적잖은 고생을 했다고 했다. 젊은 직원이 쩔쩔맸다.

“할머니, 아시잖아요.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5분 전에 승선 마감했어요. 위에(해경 등에) 보고가 다 됐기 때문에 태울 수 없어요.”

“말이 됩니까? 출발한 것도 아닌데 탈 수 없다니. 무슨 경웁니까?”

“죄송합니다. 저희도 죽겠습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모든 게 엄격히 적용돼요.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어요. 여기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도서 지역이 윗분들 지시로 매뉴얼대로 합니다.”

할머니는 직원을 탓했다. 서로 뻔히 아는 도서 지역 사람들이다. 젊은 직원은 거친 할머니에게라도 걸렸으면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것이다. 기자도 분을 간신히 삭였다. 그 사이 배가 항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두 시간 후 배가 있긴 했다. 하지만 바다 날씨는 알 수 없다. 결항이 그만큼 잦다.

그리고 창유항 대합실. 현빈 할머니, 다른 섬으로 출장 가는 통신사 직원, 이웃 섬 관매도로 가는 아주머니, 선사 직원 이렇게 넷이서 세월호 침몰 이후 섬 주민 사정을 쏟아냈다. 사고 후 섬 주민을 가장 괴롭히는 건 가스와 유류 배달이었다. 그전까지 가스와 유류는 여객선으로도 배달이 가능했다. 하지만 사고 후 원칙 적용으로 전문 운반선으로만 배달이 가능하다. 운반선은 턱없이 모자란다. 여객선 승선 인원과 차량 적재도 원칙대로 적용됐다. 관례적으로 이뤄졌던 일들이 안전기준 강화로 제자리를 잡아가는 듯했다.

“섬 주민들은 난리였죠. 가정집은 물론 식당 등이 가스를 제때 공급받지 못했어요. 어선은 경유 등을 공급 못 받아 출항을 못했고요. 한두 가지 문제가 아니죠. 선사는 과적을 못하게 되니 수익 안 난다며 운항 편수를 줄였어요. 지금도 곳곳에서 마찰이 벌어져요. 섬 주민 70∼80%가 노인들입니다. 지팡이에 의지하고 오시는 어르신들에게 원칙 적용해야 하니 미치겠습니다.”

“운항 편수 줄면 당연히 섬 주민에게 통신서비스 등이 예전처럼 미칠 수 없습니다. 출장 등에 따른 비용 발생도 늘고요.”

“이 치료는 계속 다녀야 하는데 배편이 이렇게 애를 먹이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항로가 어쩔 수 없이 바뀌면 이장 등을 통해서라도 연락을 해줘야지. 힘 있다고 너무 멋대로여.”

“(세월호 참사 후) 싹 망했어. 괴기(물고기 파는 것이)고 민박이고 손님이 있어야제. 포리(파리)만 날려.”

성토는 끝이 없었다. “하지만 원칙대로 하는 건 바람직한 거 같은데요.”

“말은 맞죠. 그런데 그 원칙을 윗분들이 지금까지 지켜왔느냐는 겁니다. 어느 날 갑자기 원칙대로 하자고 해요. 그분들은 물러나면 살 방편이라도 있죠. 또 선사는 돈 안 된다고 배편 줄여도 남는 게 있겠죠. 하지만 섬 주민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원칙 지키는 거 우리도 찬성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후속 대책도 세우지 않고 일괄적으로 바꾸라고 하면 약자들 다 죽으란 얘기죠. 뭘 만들어 놓고 (실행을) 해야지, 그냥 지시나 문서 한 장으로 밀어붙이니…. 어이구 또 열불 나네.”

그들은 얘기하고 싶어 했다. ‘세월호’ 바다는 노(老)작가 한승원 소설처럼 ‘그 바다 끓며 넘치며’였다.

전정희 종교기획부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