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햇빛만 쬐면서 아무 일도 안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식물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지구에서 문제의 소행성으로 조사관이 파견됐다. 원인을 추적하던 조사관은 지구로 돌아와 별일이 아니라고 보고했다. 하지만 어느덧 그 조사관도 햇빛을 쬐며 어린 시절에 느꼈던 행복감을 느끼는 식물이 되어 간다. 이상은 필립 K 딕의 ‘피리 부는 사람들’이란 SF 소설의 줄거리다.
전국 각지의 해수욕장이 속속 개장되면서 햇빛을 맘껏 즐길 수 있는 계절이 시작됐다. 수영복만 입은 채 해변에서 선탠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위 소설 속의 사람들처럼 정말 행복감을 느끼는 것만 같다. 굳이 구체적인 과학적 근거를 대지 않아도 햇빛이 피부에 좋지 않다는 사실은 다 안다. 주름과 잡티의 원인이 되며 탄력을 감소시켜 피부 노화를 촉진하는 것은 물론 심한 경우 피부암까지 유발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이 여름만 되면 선탠을 즐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햇빛을 쬐면 체내에서 비타민D가 합성된다. 비타민D는 임신과 모유 수유에 필요한 칼슘의 저장량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며, 사람의 골격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같은 비타민D의 생산성에 본능적으로 이끌려 선탠한 짙은 피부색의 여성을 남성들이 선호한다는 주장이 있다. 여성들도 남성의 이목구비보다는 건강 상태가 좋은 증거인 구릿빛 피부에 더 호감을 갖는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여기에 결정적인 이유를 하나 더 보태는 연구 결과가 최근 미국 연구진에 의해 발표됐다. 저용량의 자외선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아편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베타엔도르핀’을 합성할 수 있는 물질이 생겨난다는 것. 비록 생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지만 햇빛이 갖고 있는 중독성은 상상 이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쥐는 야행성 동물이라 어두운 곳을 선호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털이 깎인 채 햇빛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쥐는 밝은 곳만 찾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6주간의 실험을 마친 후 더 이상 햇빛을 쬐지 못하게 하자 쥐들은 온몸을 떨고 이빨을 부딪치는 등의 금단증상까지 보였다고 한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아랍 사내를 권총으로 살해한 후 재판관에게 ‘햇빛 때문’이라고 했다. 햇빛과 살인이라는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는 그 상황을 두고 문학에서는 ‘부조리’로 해석한다. 그럼 동물의 햇빛 중독이라는 이 아이러니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
[사이언스 토크] 햇빛 중독
입력 2014-07-05 0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