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저녁 서울 압구정로 JYP엔터테인먼트 앞. 100여명의 외국인들이 D도너츠 안팎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로 여성들로 중국 일본 태국 미국 캐나다 등에서 온 팬들이었다. 가게 안의 자리는 만원이었다. 밤 10시가 가까웠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은 없었다. 이들 중엔 JYP와 마주한 또 다른 연예기획사인 큐브엔터테인먼트를 찾은 팬들도 있었다. D도너츠는 두 대형 연예기획사 사이의 모퉁이에 위치했다. 마치 JYP와 큐브라는 섬과 마주한 육지의 항구 같았다. 팬들은 이 항구를 보급기지 삼아 연예인들이 뜨기를 기다렸다. '항구' 바깥에도 50여명의 팬들이 JYP와 큐브 쪽을 응시했다. 밤이라도 새울 듯한 기세였다. 캄보디아계 미국인 제인(22·서강대 한국어학당)씨는 "1주일에 한 번은 온다. 스타들도 볼 수 있고 한국어도 배울 수 있어서다. 기다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고 했다.
이곳 D도너츠에 따르면 이 같은 열성팬들은 하루 평균 400여명에 이른다. 고객 80%가 외국인이다. 가게 내부 벽면의 한쪽엔 ‘감사합니다’의 뜻을 가진 외국어가 쓰여진 종이가 붙어 있었다. 26개국 언어였다. 폴란드 이란 아랍에미리트 소말리아어까지 있었다. 아르바이트생 김모(23·여)씨는 “요즘은 외국 관광객들이 편지까지 써준다”며 편지를 꺼내 보여줬다. 가게에 오래 머물도록 배려해주어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D도너츠가 들어선 건물 3층엔 교회 하나가 있었다. 영성교회. 김성철(42) 목사는 “한여름이나 겨울에는 청소년 팬들이 잠을 청하러 교회에 들어오기도 한다”며 “팬들의 열정이 뜨거워 도전을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 목사에 따르면 이 교회에는 기획사 소속 연습생들이 종종 나온다. 주로 새벽예배나 금요철야예배 등에 시간을 쪼개 참석한다고 했다. 영성교회에는 JYP 출신 가수 A씨도 2년간 신앙생활을 했다. 김 목사는 “원래 조용했던 동네였는데 한국 대중문화의 심장으로 변화했다”며 “지금은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청담동. 서울 강남구의 도산대로와 압구정로·삼성로가 교차하는 곳. 청담사거리를 기점으로 압구정로에는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를 방불케 하는 명품점이 즐비하고 청담역까지 이르는 삼성로는 국내 정상급 디자이너숍과 가구점 등이 빽빽하다. 영동대교 남단 쪽으로는 SM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해 JYP 큐브 FNC 하이스타 BH 등 유명 연예기획사들이 밀집해 있다. 최근엔 클럽과 성형외과 병원이 성행 중이며 골목 곳곳엔 동화책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예쁜 웨딩숍도 늘고 있다. 강남 중에서도 부촌으로 알려진 청담동은 드라마 등에서도 다뤄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한류 진원지로서 최근 해외관광객도 급증해 지난 2월에만 4만3000여명이 다녀갔다. 강남구청에 따르면 압구정 로데오거리를 포함할 경우 월 관광객은 6만5000명이 넘는다.
변하는 청담동, 변하는 교회
청담동 교회들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조용했던 지역 주민 대상의 목회에서 벗어나 관광객과 열성팬, 주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목회와 선교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4일 국민일보 취재 결과 청담동 교회는 올해로 설립 108년이 된 청담교회(강병만 목사)를 비롯해 지난해 3월 첫 예배를 드린 베이직교회(조정민 목사)까지 총 14개로 확인됐다. 교회들은 빌딩 공간을 임대해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았고 독립 예배당을 가진 교회는 4개였다. 10년 전까지 30개가 넘었던 교회는 높은 임대료 상승을 견디지 못해 이전한 사례가 많았다. 또 주민들도 인근 대형교회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 교회 대부분 규모가 작았다.
신우교회 이진서(51) 목사는 “청담동은 독특한 지역이다. 전도활동을 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며 “유동 인구 상당수가 동남아 관광객이라 전도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현재까지 외국인들을 향한 교회의 접촉점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청담교회 이민기 부목사도 “요즘엔 기획사에서 음식점과 카페까지 운영하며 동네 곳곳으로 파고들고 있다”며 “지역주민을 위한 목회뿐 아니라 관광객 등을 향한 선교적 시도가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청담동 지역 교회 목회자들이 지역사회 선교를 위해 시동을 걸고 있다. ‘청개모’는 그중 하나다. ‘청담동 개척교회 모임’의 약칭인 청개모는 2009년 현승학(아름다운교회) 곽수광(푸른나무교회) 배송희(등대선교교회) 손종원(MEJ) 목사 등이 주축이 돼 시작됐다. 그동안 연합부흥회와 미국 윌로크릭교회의 리더십 서밋 등을 진행하며 지역 내 교인을 대상으로 활동했다. 청개모는 올해부터는 의미를 바꿨다. 아름다운교회를 제외하면 청개모 교회들이 모두 타 지역으로 이전한 상태여서 ‘청년들의 미래를 개척하는 목사들의 모임’으로 바꾸고 지역 젊은 목회자들과 모임을 갖고 있다. 또 청담동 지역 선교를 위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온다
아름다운교회를 비롯해 중심교회 the Hub(이기둥 목사), 그안의교회(김민정 목사) 베이직교회 등은 청담동 문화에 맞춘 사역을 펼치고 있다. 아름다운교회는 20여명의 디자이너들이 주축이 돼 설립된 교회로 창립 때부터 ‘한국 톱디자이너 선교바자’를 해오고 있다. 올해는 지난 5월 22일 하루 바자회를 열고 1억원을 모았다. 현승학(49) 목사는 “바자회는 선교기금을 마련하는 기회일 뿐 아니라 지역주민 복음전도의 접촉점이 된다”며 “바자회를 통해 복음을 접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아름다운교회는 청담동 문화선교를 위해 일본 디자이너 안도 다다오가 건축한 ‘빛의교회’ ‘물의교회’와 같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장소를 물색 중이다.
중심교회 the Hub는 유아와 어린이에게 특화된 교회로 알려져 있다. 특히 어린이 예배에 멀티미디어를 활용하고 있는데 ‘키즈 워십’이라는 DVD를 제작해 사용한다. 여기엔 청담동 기획사 소속 기독교인 뮤지션과 댄서들이 참여한다. 최근엔 미얀마 몽골 중국어로 제작해 현지 교회에 공급하고 있다. 이기둥(40) 목사는 “청담동 인프라를 통해 어린이 선교에 나서게 됐다”며 “일종의 콘텐츠 사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회는 지난달 말 논현동으로 이사했다.
청담동 갤러리아 명품점 건너편 MCM HAUS에서 예배를 드리는 그안의교회는 20대 대학생과 청년들이 중심이 된 교회다. 지역 주민보다 새 신자들이 많으며 비교적 캐주얼한 예배 스타일을 지향하면서 복음을 나누고 있다. 담임 김민정 목사는 성주그룹 사목이기도 하다.
영성교회 김성철 목사를 다시 만났다. 그는 “5년만 버텨보자고 했는데 벌써 10년이 됐다”며 “지금은 복음의 맑은 물을 흘려보낼 때”라고 말했다. 김 목사가 사용하는 컴퓨터 바탕화면엔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이 담겨 있었다. 대중문화가 점령한 청담동에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귀환이 기대된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청담동에 가면 스타도 있고 한류도 있고 교회도 있다
입력 2014-07-05 02:31 수정 2014-07-05 1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