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로 다가온 ‘사물인터넷 시대’] 빨래 다 돌렸니? 네, 귀가하세요… 난, 세탁기랑 채팅한다

입력 2014-07-05 02:09
LG전자 홈챗 서비스
삼성전자 '스마트홈'
직장인 A씨(37·여)는 퇴근 후 집에 들어서자 덥고 탁한 공기가 느껴졌다. 에어컨에 다가선 A씨는 “더워, 공기가 너무 탁해”라고 말했다. 그러자 에어컨은 스스로 온도조절과 공기청정 기능을 작동해 실내공기 질을 쾌적하게 바꾸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TV 앞에 앉은 그는 영화를 보기 위해 TV에 “영화채널”이라고 명령한 뒤 전등을 향해 “영화시청”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TV는 영화채널에서 볼 수 있는 영화 목록을 띄웠고, 전등은 스스로 밝기를 줄여 영화 시청에 적당하게 조도를 맞췄다. 영화 시청 도중 갈증을 느낀 A씨는 냉장고에 넣어둔 우유를 꺼내 마시려 했다. 그러자 냉장고는 “유통기한이 지났습니다”라고 알려왔다. A씨는 남은 우유를 버리고 물을 한 잔 마신 뒤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

◇현실로 다가온 사물인터넷, 일상을 바꾸다=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기술이 일반화되면서 과거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가능했던 인간과 사물이 대화를 나누는 시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정보통신 센서가 탑재된 똑똑한 전자제품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돼 인간의 생각을 읽고 교감하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사물인터넷이란 주위 모든 사물을 유무선 네트워크로 연결해 사람과 사물 간의 정보를 교류하고 상호 소통하는 지능형 인프라 및 서비스 기술을 뜻한다.

사물인터넷은 각종 센서, 구동기 및 사용자 단말을 비롯한 다양한 장치 기술의 발전과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유무선 네트워크 기술을 기반으로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다양한 센서와 구동기 및 디바이스는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연결되고 대량의 데이터를 생산해 다양한 사용자와 정보를 공유한다. 또 이렇게 수집·공유된 정보를 이용해 사용자의 생활과 밀접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진다.

사물인터넷을 이용하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편리해진다. 퇴근 전 스마트폰으로 집안의 에어컨을 켜 놓거나 세탁기를 돌려 귀가시간에 맞춰 빨래를 마치는 일이 가능하다. 일상의 모습도 획기적으로 바뀐다. 제품이나 사물을 보는 것만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도서관이나 자재창고의 자재를 실시간으로 관리하거나 원산지 내력 증명 등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산업현장에서는 각종 물품 생산이나 건강관리 분야도 데이터로 연결된 전자기기를 이용해 생산성을 높이거나 능동적인 피드백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인터넷과 증강된 데이터 처리능력을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생활 밀착형 ‘사물인터넷’이 뜬다=수년 전까지만 해도 업계에서는 사물인터넷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다. 그러나 이제는 가전업계를 중심으로 관련 투자를 늘리면서 다양한 제품에서 사물인터넷 개념이 속속 구현되고 있다. 특히 삼성과 LG 등은 올해 들어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오븐 청소기 조명 등 가전에 스마트폰과 웨어러블(착용형) 기기까지 통합플랫폼을 구축해 연결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상용화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4월 초 한국 미국 영국 등 세계 11개국에 ‘삼성 스마트홈’이라는 브랜드로 사물인터넷 기술을 적용한 가전제품군과 서비스를 본격 출시했다. 이 서비스는 각종 가전기기를 갤럭시S5와 스마트워치인 기어2에 연결해 원격 제어할 수 있게 해 준다.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조명과 로봇청소기도 삼성 스마트홈과 연결해 조명을 켜거나 끄고 로봇청소기를 작동하거나 충전하는 등의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LG전자는 지난달 말부터 국내에서 ‘홈챗’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스마트폰에 탑재된 모바일메신저에 가전제품을 친구로 등록만 하면 채팅하듯이 일상 언어로 접속할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세탁기 뭐해?’라고 물으면 세탁기는 세탁 종료까지 남은 시간, 작동 상태 등을 알려주는 식이다. LG전자는 홈챗 서비스를 지원하는 냉장고 세탁기 광파오븐을 순차적으로 출시하고 이후 북미 등 해외로 출시 지역을 확대할 방침이다. 현대차 블루링크도 대표적인 사물인터넷 서비스다. 사용자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자동차의 시동을 끄고 켜거나 에어컨 온도 등을 원격에서 제어할 수 있다. 또 자동차가 스스로 차량을 점검해 상태를 차량 주인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무한한 사물인터넷 시장, 선점 경쟁 치열=PC가 인터넷에 연결된 이후 또 다른 기기인 휴대전화가 인터넷에 연결되기까지 약 20년이 소요됐다. 그러나 그 후 TV가 인터넷에 연결되는 데 걸린 시간은 1년에 불과했고, 각종 제품과 서비스가 인터넷에 연결되는 시간은 더욱 단축되고 있다. 향후 창출될 사물인터넷 시장이 무한대에 가깝다는 뜻이다.

사물인터넷 시장을 선점하려는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물인터넷 기업인 효성ITX는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에 주목하고 있다. 클라우드란 대형 서버를 통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저장장치 등 IT 자원을 필요한 만큼 빌려 쓰고 사용한 만큼 요금을 지불하는 서비스다. 사물 간 통신으로 발생하는 막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저장·분석하기 위한 핵심 플랫폼인 셈이다. 효성ITX는 최근 연구개발 인력을 중심으로 시장분석, 마케팅, 수요처 발굴 등을 주요 업무로 하는 클라우드 사업팀과 연구·개발(R&D)팀을 대표이사 직속으로 신설하며 관련 분야 업무를 강화했다.

삼성전자 미래기술육성센터는 최근 사물인터넷 보안 분야를 미래기술로 육성키로 했다. 사물인터넷 보안은 프라이버시(Privacy) 암호화, 기기 간 인증, 인터넷망 악성 트래픽 대응 등이 주요 과제로 거론되는데, 이 분야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다양한 연구 과제를 공모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사물인터넷 분야의 세계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소비자들은 사물인터넷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이지만, 조만간 소비자들은 사물인터넷에 기반한 제품과 서비스에 둘러싸이게 될 것이고 기업들은 데이터 폭증과 관리인력 부족 등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 차원에서 막대한 초기 비용이 드는 사물인터넷 망 구축과 데이터분석 능력을 갖춘 인재 양성 등의 분야에 과감한 지원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