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성석제(54)가 2년 만에 장편 ‘투명인간’으로 돌아왔다.
특유의 입담과 해학이 더욱 질펀해진 이 소설에서 작가는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지만 묵묵히 우리 곁을 지키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이름하자면 투명인간이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 남자가 한강 다리 위에 서 있다. 금방이라도 투신할 것 같은 이 남자는 세상에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한 투명인간이다. 마침 그 곁을 지나던 또 다른 투명인간이 그의 존재를 알아본다. 그의 이름은 김만수. 작가가 내세운 투명인간의 대명사다.
작가는 시간을 되돌려 만수의 출생부터 현재까지 그의 일대기와 가족사를 통해 굴곡진 한국 현대사 속에서 수탈당하고 무시당하며 살아온 약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 김만수는 6남매 중 넷째. 대대로 부자였던 집안은 할아버지가 일제시대 독립운동 혐의를 받은 뒤 풍비박산이 났다. 야반도주한 끝에 자리를 잡은 곳이 두메산골 ‘개운리’. 그곳에서 만수의 아버지는 가족을 이뤄 살아간다.
만수는 태어날 때부터 행동도, 머리도 굼떴다. 그러나 집안일은 늘 그의 몫이었다. 그럼에도 군소리 없이 모든 걸 양보했다. 집안의 꽃은 명석한 두뇌를 가진 큰 형 백수였다. 백수는 집안의 유일한 재산이었던 소까지 팔아가며 서울의 대학에 입학했지만 연애에만 열중하다가 베트남 전에 나선다.
하지만 베트남 전에 파병된 큰형이 고엽제로 인해 목숨을 잃고 가족들은 서울로 이사한다. 이후 만수의 고난은 증폭된다. 연탄가스를 마시고 바보가 된 누나와 대학 다니는 동생들 뒷바라지는 물론 동생의 사생아까지 도맡아 키운다. 뿐인가. 공장에서 사측의 신임을 받아 관리직이 됐지만 노동자 해고에 맞서 공장 점거에도 참여하다 이 일로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다.
힘겹게 빚을 해결하고 나니 이번엔 아내가 중병에 걸린다. 평생 가족을 위해 보내지만 그는 결코 자신의 꿈인 ‘온전한 가족’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어느새 투명인간이 된다.
성석제는 만수를 통해 투명인간에 두 가지 의미를 부여했다. 모든 것을 바쳐 결국 남은 것이 없는 사람이거나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만수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설을 마무리할 즈음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면서 소설의 결론도 달라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사고 희생자를 포함해 이 땅의 수많은 사고 희생자들 역시 또 다른 투명인간이라고 규정했다. 성석제는 “낙천적인 사람이라 소설도 긍정적으로 끝내려고 했다”면서 “세월호 사고를 작가의 위치에서 어떻게 풀어갈까 고민하던 중 ‘비극은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소설을 통해 성석제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공감과 소통이 부족할 때 투명인간이 만들어집니다. 이 책을 읽고 독자들은 주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공감하기를 원합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거기 있지만 보이지 않는 늙은 家長
입력 2014-07-04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