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구의 영화산책]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고독은 깊다

입력 2014-07-05 02:23

영화는 현실과 상상이라는 두 기둥 위에 예술이라는 집을 짓는다. 상상력만 돋보이는 영화는 허무맹랑한 오락이고, 현실만 비춘 영화는 메마른 보도 영상에 불과하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그녀(her)’는 사랑에 목말라하는 현대인의 현실과 점점 인간의 모습을 닮아가는 디지털 기술의 미래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현실과 상상이라는 두 기둥으로 튼튼하고 흥미로운 집을 짓는 데 성공했다.

가까운 미래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연인들의 편지를 대필해주는 작가 시어도어(호아킨 피닉스)는 이혼을 앞두고 아내와 1년 넘게 별거 중이다. 그는 음성인식을 통해 모든 것이 자동으로 실행되는 시스템 사회에 살고 있지만 집에 오면 전자오락으로 시간을 때우며 밤이면 폰섹스로 이성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외로운 남성이다.

어느 날 인공지능 운영체제(OSI)를 구입한 시어도어는 컴퓨터가 여성의 목소리로 반응하도록 설정한 뒤 섬세하고 인간적인 운영체제의 면모에 매료된다. 스스로를 ‘사만다’(스칼릿 조핸슨)라 이름 짓고 여성적인 감정을 발산하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중년 남성과의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인간과 기계로봇 사이에 벌어지는 우정이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SF영화에서는 진부한 것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운영체제(OS)와의 사랑 이야기는 신선하다. 스마트폰 하나면 언제 어디서든지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오늘날의 현실은 사만다라는 이름의 운영체제와의 사랑이 일어날 수 있다는 설정에 대해 쉽게 관객의 동의를 얻어냈다. 그것은 점점 인간화되어가는 미래기술에 대한 상상을 설득력 있게 펼쳐 보이는 작가와 감독의 능력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 사회를 사는 현대인의 필요와 욕망에 대한 인식이 영화를 통해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첫째, 영화는 친밀한 관계를 필요로 하는 현대인의 욕구를 드러낸다. 주인공 시어도어는 감성적인 손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한다. 미래의 사회에서 손으로 직접 쓴 것 같은 낭만적이고 시적인 편지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한 사회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알게 모르게 관계를 맺고 살지만 진정 사랑을 나누며 살지 못한다. 이런 사실은 친밀성에 대한 갈증이 더욱 깊어지는 현실을 깨닫게 한다. 영화에 나타난 친밀성이란 ‘동반자’의 성격으로 나타난다. 사만다는 시어도어가 사용하는 이어폰과 휴대전화의 카메라를 통해 늘 동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언제 어디서든지 함께하며 자신과 끊임없이 교감할 수 있는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사만다가 비록 운영체제에 불과하지만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어도어와 늘 함께하면서 그의 필요를 채워주려고 한다. 이 모습 속에는 인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이 현대인에게 필요함을 우연찮게 발견할 수 있다.

둘째, 영화는 윤리성을 갖춘 거룩한 접촉에 대한 필요를 보여준다. 뛰어난 인지능력을 갖추면서 인간의 감정을 읽고 표현하는 데 성공했지만 프로그램상의 운영체제에 불과한 사만다는 몸이 없다. 아무리 인간을 사랑해도 육체적 관계는 불가능하다. 거기다 사만다는 스스로 진화하면서 8316명에게 동시에 사랑을 속삭이고, 그중 641명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시스템으로 발전한다. 디지털 시스템이 갖추고 있지 못한 윤리성과 접촉의 한계를 지적하는 대목이다.

이것은 현대교회가 이 영화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성경의 전도서에 기록한 대로 홀로 있는 자의 헛된 삶(전 4:7∼8)을 목격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사랑에 관한한 최고의 전문가 집단으로 이루어지는 교회를 향해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현대인들이 도움을 바라는 손길을 볼 수 있다. 예전에 사도 바울이 환상 가운데 도움을 청하는 마게도냐 사람을 본 것처럼(행 16:9) 말이다.

◇약력: 서강대 종교학과와 동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기독교 영화평론가로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언론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강진구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교수>